전주초등학교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의 비석 하나

학교를 새로 지은 참사 김도홍 기념비

작성일 : 2023-07-11 10:13 수정일 : 2023-07-11 13:04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전주초등학교는 전주의 중심지였던 중앙동에 위치한 전북 최초의 초등학교다.

개교 126년을 맞이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학교이며 이곳에서 수많은 전북의 인재들을 길러내었다.

그러기에 학교 자체가 하나의 전북교육의 발자취이며 전주초등학교의 역사가 곧 전북교육의 역사라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전주초등학교에 들어가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를 않는다. 그 오랜 역사의 흔적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학교 역사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기록을 보관해 놓은 곳도 없다.

오로지 남은 것은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땅뿐이다. 학교의 위치만 옛날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어쩌면 웃동을 싹둑 잘라버린 향나무가 그나마 옛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화단에 서 있는 웃동이 싹둑 잘린 향나무가 오래된 학교임을 말해주고 있다 

 

전주초등학교 교정을 빙 둘러보고 있는 내 눈에 번쩍 뜨이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동쪽에 허술하게 서 있는 비석하나다.

 

전면에 전 참사 김공 도홍 기념비(前參事金公道弘紀念碑)”라고 쓰여 있는 비석인데 온통 한자로 쓰여 있다.

김도홍(金道弘)!

이 사람이 당시에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학교다운 면목도 갖추지 못한 전주초등학교를 거금 1만 원을 내놓고 학교를 옮겨 새로 지어줄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남으로써 현재의 전주초등학교를 있게 한 장본인이다.

비석에 쓰여 있는 내용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마다 부자가 되기는 어렵다. 어진 부자라면 자랑스러운 일이다. 아들이 부모의 유훈을 따르고 부인이 남편 말을 좇아 공익사업에 큰돈을 썼다면 이는 더욱 신선한 일이다.

이런 일은 예나 지금이나 보기 드문 일이라 장한 일이다.

우리 고장의 전 참사 김도홍은 김해 김 씨로 가락국 수로왕의 후손이다. 흥무왕이라 일컬었던 김유신이나 탁영 일손 선생이 모두 빛나는 조상이고 조선 선조 때 대사헌 호조참판으로 자가 거린이요 이름이 거였던 어른이 11세조이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셨지만 맨손으로 집안을 일으켰고 푼돈을 아껴 자선사업에 선뜻 내어놓았으니 그 탁월함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지금의 전주초등학교를 있게 했던 김도홍의 기념비

 

김도홍은 1924년에 중풍을 얻어 몸이 점점 쇠약해갔다. 그는 병석에서 평소에 친하게 지냈던 이강원을 불러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람의 일생은 잠깐이다. 재산이라는 것은 좋은 일에 쓰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목숨이란 하루아침에 어찌될지 모르며 재산이란 별것이 아니다. 어차피 초목으로 돌아갈 몸이니 나도 뒷일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

우리 지방의 급선무는 교육문제다. 처자와 상의하여 의연금을 내어놓을 것이니 여러 사람들과 쓸모를 상의하여 처리하기 바란다.”

그리고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인 백 씨는 남편이 평소에 교육에 관심이 많았는데 임종하면서 학교를 옮겨 세우기를 바란다고 하였다면서 당시의 돈 1만 원을 내어 놓겠다고 하였다.

이에 당국에 알리고 설계를 거쳐 학교를 다시 세우니 그 학교가 바로 지금의 전주초등학교인 것이다.

그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작지만 석자 비라도 세워 오래 기념하자는 의견을 모아 비를 세우게 되었으며 전후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비문을 써야 한다하기에 7위 전 중추원 참의(正七位 前中樞院 參議) 전주 이씨 이강원(李康元)이 글을 쓰게 되었으며 전 후능 참봉(前厚陵參奉) 광성 이씨 이순재(李舜載)가 글씨를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주초등학교의 당시의 이름이었던 전주제일공립보통학교 학무위원과 교원과 생도들이 함께 비를 세웠다는 것이다.

 

오래된 향나무 뒤로 보이는 지금의 전주초등학교

 

이강원은 비석의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 김군이여!

사랑과 믿음이 천부적이더니 돈과 인자함도 함께 지녔구나.

그 남편 그 아내 한결같아 선한 모습 어진 마음 모범을 보이더니 선뜻 큰 재산 제대로 쓰여 휘장처럼 환한 학교 모습을 갖추었구나. 이에 한 조각 돌 위에 그 이름을 새기노니 그 이름 영원하리라.”

 

전주초등학교 여기저기에 남아 있던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물들이 해방 후 국립전주박물관을 비롯한 다른 기관으로 이송되어 갔고 남은 것들은 거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 비석은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이 비석도 전주박물관으로 옮겨가려고 했다. 그러나 뜻있는 사람들이 옮겨가지 못하게 했다. 참사 이도홍은 일제 앞잡이도 아니요 친일파도 아니며 오로지 교육을 위해 일한 사람이니 그대로 전주초등학교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귀한 비석을 관리라도 잘 해야 하는데 비석 하나만 덩그렇게 풀밭에 놓여 있다. 지금부터라도 학교 당국은 김도홍의 뜻을 학생들에게 잘 알리고 기념비 주변을 다듬어서 교육의 자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용만 기자 ym60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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