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 김제 만경 평야다. 만경강과 동진강 물이 넓은 들판을 적시면서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를 이룬 것이다.
인류가 사냥을 하면서 떠돌아다니다가 곡식을 재배하면서 정착을 할 때 들판이 있고 물이 있는 곳을 찾게 되었는데 큰 강과 너른 들판이 있는 김제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이에 따라 농사에 쓸 물을 모아두는 저수지가 필요하게 되었다. 지금도 일부가 남아 있는 김제의 벽골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이며 가장 큰 저수지이기도 했다.
벽골제는 백제 시대부터 만들어졌다. 비류왕 27년인 서기 330년에 둑의 길이가 1,800보 규모가 되는 저수지가 축조되었다.
그 후 통일신라 원성왕 6년인 790년에 벽골제를 증축하게 되었다. 그때에 있었던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데 지금 벽골제 광장에서 가장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는 커다란 용 두 마리가 등장한다.

벽골제 전설을 뒷받침하는 쌍룡
신라에서는 원덕랑을 총감독으로 보내 김제 태수와 함께 벽골제를 보수하도록 하였다. 원덕랑은 벽골제 공사에 대한 협의를 하기 위하여 김제 태수의 집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그때에 김제 태수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단야낭자라 하였다. 원덕랑을 자주 보게 된 단야낭자는 원덕랑에 대한 연민의 정을 품게 되었고 사모하는 마음이 갈수록 깊어 갔다. 그런데 원덕랑에게는 정혼을 한 월내낭자가 있었다.
벽골제는 워낙 큰 저수지여서 두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 청룡과 백룡인데 백룡은 태풍과 홍수 등 자연재해를 막아주는 선한 용이었고 청룡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심술궂은 용이었다.
벽골제가 완성되어 갈 때쯤 청룡이 심술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청룡은 폭풍우를 만들어 지금까지 애써서 쌓아놓은 벽골제 제방을 무너뜨리기 시작하였다. 백룡이 말렸으나 말을 듣지 않고 처녀를 제물로 바치면 심술을 멈추겠다고 하였다.
그때 마침 원덕랑의 정혼녀인 월내낭자가 원덕랑을 찾아 김제까지 오게 되었다. 김제 태수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월내낭자를 보쌈을 해서 청룡에게 바치도록 했다.
마침내 월내낭자가 머무르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둘러쓰고 있는 월내낭자를 보쌈을 해다가 벽골제 청룡에게 바치게 되었다. 낭자를 물속에 던지기 위하여 이불을 걷는 순간 모두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보쌈해온 사람은 월내낭자가 아니라 단야낭자였던 것이다.
단야낭자가 원덕랑을 진심으로 사랑한 나머지 자기가 희생양이 되기로 결심하고 월내낭자를 내보내고 이불을 둘러쓰고 있었던 것이다.
“벽골제는 많은 백성들이 농사를 짓기 위한 중요한 제방입니다. 제가 제물이 될 테니 헐지 마세요.”
단야낭자는 청룡에게 외치며 청룡을 향하여 물로 뛰어들었다.
청룡은 단야낭자의 거룩한 희생 앞에 마음을 고쳐먹고 행패를 부리지 않게 되어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이 벽골제 수문이었음을 나타내는 돌 기둥
‘벽골’이라는 말은 우리말 ‘벼골’을 음차한 말이라는 설과 마한 시대에 김제 지역에 위치했던 벽비리국과 백제 시대의 지명 벽골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벽골제의 규모에 대한 이야기로 근처에 ‘신털미산’과 ‘되배미’가 있다. 신털미산은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어찌나 많았던지 짚신에 묻은 흙을 털어낸 곳이 하나의 산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되배미는 일꾼의 수를 세는데 5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논을 만들고 그것을 기준으로 수를 세었다는 것이다.
벽골제는 그 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증축을 하였는데 일제강점기 때에 동진수리조합이 농지 관개용 간선수로를 설치하면서 많이 훼손되었다.
벽골제는 1963년 사적 제111호로 지정되었으며 1975년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토록 크고 방대했던 벽골제였는데 오늘날은 제방의 일부와 이곳이 수문이었음을 나타내는 장생거와 경장거 2개의 석주 등 몇 가지만 남아 있다.
벽골제 부근의 농사에 쓰이는 물은 임실 옥정호에서 산을 뚫어 칠보발전소로 유입된 물이 배수로망을 통해 이곳까지 흘러와 들판을 적시고 있다.

김제 지평선 축제 때 쌍룡 앞에 모인 사람들
해마다 풍년을 기원하고 농경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열리는 전국적인 행사인 제25회 김제지평선 축제가 10월 5일(목)부터 10월 9일(월)까지 벽골제를 비롯한 김제시 일원에서 열린다.
벽골제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도 없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단야낭자의 숭고한 희생이 밑거름이 된 때문이 아닌가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