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순교자의 피가 어린 경건한 곳
전주 한옥마을 한복판에 서 있는 전동성당은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곳이다.
전주 한옥마을에 와서 전동성당을 안 보고 간 사람은 전주를 제대로 둘러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가 천주교인이거나 기독교인이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사람은 다시 와 봐야 한다. 그만큼 전동성당은 중요한 곳이다.
전주 전동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가 나온 곳이다. 천주교 박해가 일어나 핍박이 심할 때에도 믿음을 굳게 지켜 오다 처형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초창기의 천주교인들이 겪었던 수난은 전동성당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 본래 전라감영이 있던 자리였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순교를 하였다. 그 후 18세기말부터 19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천주교 박해가 일어날 때마다 천주교인들이 처형을 당하던 곳이다.
지금 성당 뜰에 칼을 쓰고 앉아 있는 조형물은 피눈물 나는 천주교인들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아픈 조형물이다.
이곳은 바로 옆에 있는 전주천변인 곤지산 초록바위 아래에서 처형을 당해 남문에 매달린 순교자들의 머리를 바라보았던 곳이다.
지금의 전주 전동성당(全州殿洞聖堂)이 세워진 것은 조선말 고종 28년인 1891년에 바디네(Francis Baudounet) 신부가 전주 남문 밖에 집을 매입하고 정착하면서부터다. 그 뒤 1908년 프와넬(Poisnel) 신부의 설계로 성당 건축에 착수하여 1914년에 준공을 보았다. 벽돌로 된 완전한 격식을 갖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건물은 서울의 명동성당과 외양상 유사한 점이 많으나 건축 양식상으로는 많은 차이가 있다.
회색과 적색의 다른 벽돌을 사용하여 섬세한 모양을 꾸며낸 점은 같으나 반면에 아치의 모양이나 종탑의 양식은 전혀 다르다.

전동성당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자가 된 사람들의 피가 흐르는 곳이다
성당 내부의 기둥은 8각의 석주(石柱)로 되어 있으며, 정면 중앙의 종탑부는 12개의 채광창을 돌린 12각형 고상부(鼓狀部) 위에 12각의 총화형(葱花形)으로 된 둥근 지붕을 얹었고, 좌우에는 그보다 약간 작은 8각형의 고상부 위에 8각의 지붕을 얹었다.
두툼한 외부 벽체와 반원 아치의 깊숙한 창이 로마네스크 양식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고딕 양식의 명동성당이 내부 열주 사이를 뾰족한 아치로 연결한 아케이드인 데 반하여, 이 성당은 8각 석주 사이가 반원 아치로 연결되어 있다.

전동성당을 세운 바디네 신부의 흉상과 전동성당 안내문
전동성당은 초기 천주교 성당 중에서도 그 규모가 크고 외관이 뛰어나게 아름답다. 이 성당은 건평 189평에 대지 4,000평이며, 전주 중앙성당이 1956년에 준공되기 전까지는 전주교구 주교좌성당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꼽히는 전동성당은 호남 지방에 세워진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써는 최초의 성당이고 가장 규모가 큰 성당이다. 1981년에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왁자지껄한 한옥마을을 둘러보다가 이곳에 들려 잠시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 보면서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피 흘렸던 순교자들을 생각해 보는 것도 나를 돌아보는 삶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