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팔도 십승지(十勝地)가 전북에만 세 곳

난리를 피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피난처

작성일 : 2023-10-22 19:19 수정일 : 2023-11-03 15:34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십승지(十勝地)는 십승지지(十勝之地), 또는 승지(勝地)라고 하여 조선시대에 조선팔도 중에 난리를 피하여 몸을 보전할 수 있고 거주 환경이 좋아 편안히 살 수 있는 열 곳의 피난처를 말한다. 그런데 그중에 전라북도에 세 곳이나 있다.

 

십승지는 한국인의 전통적 이상향의 하나를 말한 것이다. 십승지는 정감록(鄭鑑錄)에 근거한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온 곳이다.

십승지지에 관한 기록은 정감록중에 감결(鑑訣), 징비록(懲毖錄), 유산록(遊山錄), 운기귀책(運奇龜策), 삼한산림비기(三韓山林秘記), 남사고비결(南師古秘訣), 도선비결(道詵秘訣), 토정가장결(土亭家藏訣) 등에 기록되어 있다.

 

십승지는 문헌에 따라 다소 다르기도 하는데, 대체적으로 공통된 곳은 다음 열 곳이다.

영월의 정동(正東)쪽 상류, 풍기의 금계촌(金鷄村), 가야산의 만수동(萬壽洞), 부안 호암(壺巖) 아래, 보은 속리산 아래의 증항(甑項) 근처, 남원 운봉 지리산 아래의 동점촌(銅店村), 안동의 화곡(華谷), 단양의 영춘, 무주의 무풍 북동쪽 등이다.

 

정감록에는 조선이 망한 후 정 씨가 계룡산 인근에서 새 나라를 세운다는 예언이 적혀있다. 조선 후기에 발생한 모든 민란에는 빠짐없이 등장한 도참서(圖讖書)이다.

무능하고 부패한 왕권에 고통받던 민초들에게 정의와 도덕이 땅에 떨어진 세상은 곧 끝나고 후천개벽으로 새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했다. 그런데 이 책에 기록된 십승지는 외적이 침입했을 때에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곳을 말하며, 탐관오리의 횡포가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심산유곡이 많다.

 

십승지지는 조선 후기의 이상향에 관한 민간인들의 담론이었다. 십승지 관념은 조선 중, 후기에 민간 계층에 깊숙이 전파되어 거주지의 선택과 공간 인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십승지지는 조선 후기의 정치와 사회적 혼란과 민간인들의 경제적 피폐라는 역사적 배경에서 생겨났다. 십승지의 입지 조건은 외침이나 정치적인 침해가 없으며, 자연환경이 좋고 자족적인 경제생활이 충족되는 곳이었다.

 

이상향에 대한 관념은 동양과 서양이 다르고 시대에 따라 달랐으며 문화 속성에 따라 차이가 난다. 불교의 극락과 정토, 기독교의 천국과 에덴동산, 도교의 무릉도원, 삼신산, 청학동 등은 사후 아니면 관념적인 이상 세계를 일컫는 말이고, 현실의 이상향을 표현한 말로서 길지(吉地), 낙토(樂土), 복지(福地), 명당(明堂), 가거지(可居地) 등의 용어들이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승지(勝地)였다.

 

전라북도에 있는 십승지 세 곳

 

첫째, 지리산의 운봉이다.

운봉의 두류산, 혹은 운봉 행촌, 혹은 운봉 두류산 아래 동점촌 100리 안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운봉에 있다는 지리산 십승지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유교 지식인들과 지리산 주변에 거주하는 지역민들 사이에서 이곳을 주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리산 속의 십승지인 남원 운봉의 십승지 위치도    

 

운봉 두류산 아래에 동점촌이 있는데, 100리 안에 영구히 거주할 만한 곳이 있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정확히는 모른다고 하였다.  근래에 운봉 사람이 비로소 그곳을 찾았는데 운봉읍 소재지에서 25리 떨어진 곳이며 지리산 반야봉 괘협처(掛峽處)라 하였다. 석벽의 높이가 몇 길이나 되는 곳인데 동점(銅店)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있다는 것이다. 글자의 획이 어지러이 소멸되어 분간하기 어려운데 예전에 구리를 제련하던 곳이라 한다. 그곳은 근방에 돌을 파내고 구리광을 캐는 흔적이 많다. 동점촌은 그 가운데에 있는데 평탄하며 가운데에 있으면 사방이 보이지 않고 주위가 제법 넓다. 30~40호가 거주할 만한 농경지라 한다.

 

둘째, 무주 무풍이다.

십승지지 중에 백두대간의 덕유산과 대덕산 지역으로 거론된 곳은 감결외에도 남격암산수십승보길지지」에도 기록되어 있

무주 무풍 북쪽 동굴 옆의 음지이니 덕유산은 난리를 피하지 못할 곳이 없다고 구체적인 장소를 기록하면서도 덕유산 전체를 난리를 피하여 몸을 보전하는 승지로서 표현되어 있다. 정감록의 감결이나 남격암산수십승보길지지에서 말한 무풍은 현재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일대다.

 

 무주 무풍에 설립된 십승지 문화센터 

 

백두대간의 덕유산과 삼도봉 자락에 둘러싸인 무풍은 조선시대의 도로 교통 조건에서 큰길과 떨어져 있어 지리적 오지에 위치하고 있으나 큰 하천을 끼고 있고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 지형을 갖추고 있다. 실학자 이중환도 택리지에서 말하기를, “남사고(南師古)는 무풍을 복지(福地)라 하였다. 골 바깥쪽은 온 산에 가려져 있고 밭이 기름져서 넉넉하게 사는 마을이 많으니, 이 점은 속리산 이북의 산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고 하였다.

무주군에서는 무풍에 십승지 문화센터를 설립하고 무풍이 십승지임을 널리 알리고 이를 기념하고 있다. 

 

셋째, 부안 호암(壺巖) 아래다.

() 자는 병, 단지, 박을 의미하며 대표적인 말 가운데 투호(投壺)가 있다.

부안의 호암은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있는 바위인데 우동리 초입에서 북쪽을 올려다보면 옥녀봉 아래로 바위굴이 보인다. 동굴 안에서 굴 밖을 보면 입구가 마치 병을 세워 놓은 모습이라 호암(壺岩) 즉 병바위라고 부른다.

굴 안으로 들어가 보면 100명은 충분히 숨어 살 정도로 아늑하고 평탄한 큰 공간이 있다. 동굴 안에는 침샘이라 부르는 샘물이 있는데 한방에 특효가 있어 물을 마신 뒤 병을 고친 사람이 많다고 한다.

 

전북 부안의 호암 동굴은 핵폭탄도 피할 수 있는 십승지다 

 

호암은 산과 바다가 에워싼 외부와 고립된 곳이라 외적이 침입하기 어려운 반면, 곰소에서 나오는 해산물과 산과 들에서 나오는 임산물을 모두 얻을 수 있어 생존환경이 우수하고, 나아가 위험에 처하면 산이나 바다를 이용해 가까운 섬으로 피신도 가능한 곳이다.

 

호암이 있는 우동리의 감불 마을은 남대봉, 감투봉, 망월봉이 삼면을 감싼 삼태기형 마을인데 풍광이 우수하고 천마산이 바다를 가로막아 안전한 곳이다.

 

대개의 십승지는 백두대간의 산자락 즉 해발고도가 높은 산악지형에 있으나 유독 공주의 마곡과 부안의 호암만은 깊은 산지가 아닌 곳에 있는데 특히 호암은 호남정맥에서 갈려 나온 산줄기가 고창의 방장산으로 솟고 그곳에서 다시 벋어나온 지맥이 야산과 논밭 등 낮은 구릉성 지형을 이루며 북쪽으로 뻗어온 뒤 서해를 만나 전진을 멈춘 곳이다. 그래서 십승지 중 유일하게 바다를 끼고 있어 쌀이 떨어져도 물고기와 해산물을 취해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곳이다.

 

최근에는 북한의 핵 공격을 받아도 몸을 보전할 수 있는 곳으로 십승지 중 첫째로 꼽히고 있다.

 

정감록에 기록된 십승지는 외적이 침입했을 때에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곳이며 탐관오리의 횡포가 미치지 못하는 곳을 말한다.

결코 배부르고 걱정 없이 사는 이상향인 무릉도원이 아니다.

그런데 십승지를 전쟁을 피하고 탐관오리의 학정을 피하며 자손만대가 영화를 누리며 편안하게 잘 살 수 있는 무릉도원으로 오인한 사람들이 많이 찾아들기도 하였다. 그들은 결국 고립된 환경 속에서 가난과 무지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십승지는 결코 지상낙원은 아닌 곳이다.

 

 
이용만 기자 ym60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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