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중한 보물과 지방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귀미(龜尾) 마을을 찾아서

남원 양(楊)씨를 번성케 한 양씨 집성촌

작성일 : 2023-11-06 07:00 수정일 : 2023-11-06 08:23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순창에서는 흔히 남원 양씨를 귀미 양씨라고도 부른다. 그만큼 귀미마을은 남원 양씨의 본가요 집성촌이기 때문이다.

 

귀미(龜尾)마을은 순창군 동계면 소재지에서 출발하여 조금 북쪽에 위치한 관전마을을 지나 서쪽으로 보이는 무량산을 끼고 고개를 넘으면 나타나는 남원 양씨 집성촌이다.

이곳이 남원 양씨가 번성하였고 가문을 일으킨 곳이다.

 

 남원 양씨 가문을 일으킨 순창군 동계면 귀미마을 전경

 

이곳 귀미마을에 남원 양씨가 자리를 잡은 것은 고려말 공민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공민왕 2년인 1353년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2년 뒤인 1355년에 문과에 합격하여 집현전 대제학의 자리에 오른 양이시(楊以時)의 외아들 양수생(楊首生)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버지 양이시에 이어 문과에 합격하여 우왕 3년인 1377년 집현전 직제학을 지낸 양수생은 20대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만다.

당시 고려시대에는 남편이 죽으면 부인은 개가를 할 수 있었다. 양수생의 부인 숙인 이씨는 뱃속에 아이가 있었다. 친정 부모로부터의 개가 권유에도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고 고집하여 아들을 낳았다.

 

계속되는 친정 부모의 개가 권유를 뿌리치고 어린아이를 업고 개경에서 남편의 옛집이 있는 남원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마침내 남원에 도착하여 교룡산 아래에 자리를 잡은 때가 1378년이었다.

그러나 그때 무렵 남원은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들이 진을 치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을 때였다.

 

위험을 인지한 이씨 부인은 남원 서쪽에 있는 비홍재로 거처를 옮겼다. 비홍재에서 바라보니 서쪽의 순창 쪽에 살만한 터전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는 나무로 세 마리의 비둘기를 만들어 날려 보냈다. 그랬더니 한 마리는 관전에 앉고 한 마리는 적성 농소로 날아가고 한 마리는 귀미에 앉았다.

그는 유복자였던 아이를 업고 귀미로 갔다. 이렇게 하여 귀미마을이 700년 남원 양씨의 집성촌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숙인 이씨는 개경을 떠나올 때 가져온 소중한 문건이 있었다. 과거시험에 합격을 알리는 홍패와 남원 양씨 내력을 보여주는 가승보였다. 이것들은 지금 보물로 지정되어 국립 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정에서 정려문을 새워준 숙인 이씨 정려 기록

 

귀미마을에 정착한 숙인 이씨는 부지런히 일을 하면서 아들 양사보(楊思輔)를 공부시켜 사마시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가 함평현감을 지냈다.

이러한 숙인 이씨의 충절과 절개가 조정에까지 알려져 세조 13년인 1467년에 왕명으로 정려가 내려졌다.

지금의 정려비와 정려각은 영조 50년인 1774년에 후손들이 중수한 것이다.

 

 숙인 이씨 정려비와 정려각

 

귀미마을은 한때 300여 호에 1,000여 명의 남원 양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초등학교가 따로 세워질 만큼 번성했으나 시대적 조류는 어쩔 수 없어 지금은 100여 호에 장수 마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귀미마을에는 소중한 자료와 문화재들이 있고 주변에는 빼어난 자연경관들이 많이 있다.

남원 양씨 가문에는 홍패 2점과 교지 5점이 국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홍패 2점은 고려시대에 과거시험 급제자에게 주는 붉은 증서인데 현재 국내에 6점만이 전해지고 있는 소중한 자료다.

 

남원 양씨 가문의 보관 기록물

 

남원 양씨 문중에서 보존 중인 문화재에는 광제정, 어은정, 귀암정이 있다.

광제정(光齊亭)은 임실군 삼계면 세심리 냇가 옆의 감은산 줄기 끝에 있는 정자로 정조 13년인 1788년에 서원인 아계사(阿溪祠)를 세우고 배향을 하던 곳이었으나 조선 말 서원 철폐령에 따라 사원이 헐리자 그 자리에 세워진 정자다.

정자 밖에는 광제정(光齊亭)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안에 양돈의 아호인 매당(梅堂)이라는 편액이 하나 더 걸려 있다. 전라북도 지방문화재 제139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라북도 지방문화재인 남원 양씨 가문에서 세운 광제정

 

어은정(漁隱亭)은 순창군 적성면 귀남에 있는 정자로 1580년대에 지은 정자다. 남원 양씨 정자로써 가장 오래된 정자다. 전라북도 지방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다.

 

귀암정(龜巖亭)은 양배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순창 유림과 양씨 후손들이 적성면 지붕리에 서원 지계사를 세우고 주벽으로 모셨던 곳이다. 사원 철폐령에 따라 서원이 철폐되자 섬진강 만수탄 자리에 광무 5년인 1901년에 세운 정자다. 전라북도 지방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밖에 남원 양씨 문중에는 교지와 교첩 10, 소지 87, 백패 1, 책자 1점 등 499점이 전라북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귀미마을 주변에는 이름난 명소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용궐산과 요강바위다.

용궐산은 높이 645m의 산이다. 본래는 용이 하늘을 나는 형상이라 하여 용여산이라 불렀다. 그것을 일제강점기 때에 뼈 골() 자를 써서 용골산(龍骨山)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죽은 용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것을 현재 남원양씨대종회장인 양심묵(楊深黙) 씨가 용궐산으로 개명 운동을 벌여 20094월에 용궐산(龍闕山)으로 개명을 한 것이다.

용궐산으로 개명을 하자 유명세를 타서 스릴 넘치는 하늘길이 놓이고 숲 정원이 이루어졌으며 전국적인 등산로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관광지가 되었다.

 

요강바위는 용궐산 산자락 아래에 있는 장군목 마을 앞에 있는 섬진강 물줄기가 바위를 깊게 파놓은 자연 수석 박물관이다. 아이를 못 낳는 여인이 깔고 앉으면 아이를 낳게 된다는 전설이 내려오기도 한 바위다.

몇 년 전에는 요강바위를 훔쳐가기도 했는데 마을 사람들의 노력으로 다시 찾아오기도 했다.

 

단위 마을로써는 근방에서 제일 큰 귀미마을은 남원 양씨의 본산이요 가문을 번성케 한 명당터다. 소중한 문화재를 간직한 국가적인 집성촌이기도 하다.

 

 

 
이용만 기자 ym60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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