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탈의 하나였던 근대화 시절 전당포
오래전부터 전주의 중심지였던 풍남문 부근은 아직도 옛 자취가 여기저기 많이 남아 있다. 풍남문에서 천천히 중심부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한때 돈푼깨나 있던 사람들이 드나들던 고급 요릿집이었던 행원이 있고, 전당포였던 공익질옥이 있으며 전라감영과 전주 관아가 있던 자리와 근대문화를 이끌었던 공보관과 전주우체국 사거리가 나온다.
그중의 하나가 일제강점기 때에 가난한 사람들이 돈이 없어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던 패물을 저당 잡히고 돈을 빌려갔던 전당포인 공익질옥이 있다.

옛날 공익질의에 대한 안내판과 지금의 호텔 간판
질옥(質屋)이란 채권자가 사용 가치가 있는 값나가는 물건을 잡히고 자금을 빌려주면서 이자 취득을 업으로 하는 전당포를 말한다.
공익질옥(公益質屋)은 국가나 공공단체가 보조를 하여 운영되는 형태의 질옥으로 사회 정책의 한 형태였으며 식민지 수탈의 변형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전국 최초의 전당포였던 공익질옥이 있던 자리와 그때의 건물
1920년 전주는 우리나라에서 사회 정책 성격의 공익질옥이 생긴 최초의 도시였다. 그 후 1940년 지금 형태의 시설이 신축하여 현재까지 남아 있다.
공익질옥이 있는 풍남문에서 전라감영으로 난 이 길은 현재 풍남문 3길이며 가난했던 시절 큰돈을 융통할 수 있는 제3금융권 시설들이 모여 있던 골목이기도 하다.
공익질옥의 옛 자취는 풍남문에서 전라감영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올라오면 공익질옥에 대한 안내판이 서 있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난 골목을 들어서서 조금 걸어가면 일본식 다다미 형태의 집이 서있다.
시화연풍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호텔이 바로 공익질옥이 있던 곳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의 건물을 최대한 살려 보존을 하고 있으며 내부 시설도 예스러움을 잃지 않도록 배려를 하였다.
대문부터 무거운 자물쇠를 달아놓아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위압감이 있으며 1912라는 숫자와 공익질옥이라는 큰 글자가 무거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문에 공익질옥이라 쓰여 있는 옛 전당포인 공익질옥이 있던 자리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아늑하고 환하다.
오래전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고 분위기도 예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공익질옥에서 잠시 쉬어가면서 전주의 풍미를 맛보는 것도 전주 관광의 또 다른 맛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