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객사 부근은 도심 지역의 중심지다.
전주객사 2길은 객사 뒤편의 번화가를 이어오는 길이다.
그런데 이곳에 조선 시대에 세워 놓은 수원백씨 효자 정려각이 있다.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다.
정려(旌閭)란 조정에서 백성들에게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하여 효자, 충신, 열녀 등이 살던 동네에 붉은 칠을 한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였는데 정려비는 정려를 받은 내용을 비에 새겨 놓은 것을 말하며 정려각이란 정려비를 보호하기 위하여 작은 정자를 지어 세워 놓은 집을 말한다.
정문이나 정려를 세운 것은 신라 때부터이며 시작되었으며 고려를 거쳐 조선에 와서는 전국적으로 상당수의 정문과 정려각이 세워졌다.
수원 백씨(水原白氏)는 경기도 수원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백씨대동보(白氏大同譜)』에 따르면 시조 백우경(白宇經)은 중국 고대의 전설 속의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 16세손 백을병(白乙丙)의 후손으로 중국 소주(蘇州) 출신이다. 당(唐)나라에서 벼슬이 첨의사(僉議事)와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다.
그러나 간신(奸臣)들의 모함을 받아 신라 선덕왕 1년인 780년에 신라에 건너와 지금의 경주시 안강읍 옥산동 자옥산(紫玉山) 밑에 정착한 후 영월당(迎月堂) 만세암(萬歲庵)을 짓고 학문 보급에 힘썼다고 한다.
이후 계대(系代)가 불명하여 신라 경명왕(재위 917년∼924년)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내고 상장군(上將軍)에 증직되었다는 백창직(白昌稷)을 중시조(中始祖)로 받들고 있다.

전주 구심의 한 복판인 객사 뒤의 길가에 서 있는 수원백씨 정려각
이곳 객사 뒤쪽 객사 2길에 있는 효자 정려각은 수원백씨 백행량과 백응만 부자와 백규방, 백진석 부자의 효행을 기리고자 조선 왕실의 명에 의하여 건립된 것이다. 이들은 모두 문경공 휴암 백인걸의 후손이다. 백인걸은 조광조의 제자이며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스승으로 대사간, 대사헌,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선조 당시의 청백리다.
백행량, 백응만 부자는 효심이 지극해서 부모상을 당해서는 묘 옆에 굴을 만들고 묘를 지켰다. 특히,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백행량이 시묘살이 하던 영조 43년인 1767년에는 전주에 대화재가 일어나 수천 호가 불탔는데 백행량의 집만은 불에 타지 않았다고 한다.
백행량의 아들 백응만 또한 효행이 뛰어나 전라도 관찰사 이호준과 전주부 유생들이 정려를 건의하는 상소를 올렸고 이들 부자의 효행을 기록한 삼강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들이 시묘살이를 했던 황방산에는 지금도 시묘천이라는 우물이 있다. 백규방은 어린 나이에 이미 부모님 섬기는 도리를 알았고 한 번도 어버이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으며 부친이 병이 났을 때 탕약을 자기 손으로 달여 드리는 등 지극한 병간호로 병이 나아 부모님으로 하여금 천수를 다하게 하였다.
부모상을 당하여 행한 그의 효심에 모두가 탄복하였으며 전라도 관찰사 서상정과 유생들이 정려로 표창해 줄 것을 요청하는 계문을 올렸다. 헌종 대에 가선대부 호조참판 벼슬을 제수받았다.

대를 이은 효도로 조정에서 내린 정려를 지키고 있는 정려각
백진석은 오위장을 지낸 무장으로 부친 규방의 효행을 본받아 부친의 병간호를 지성으로 하였으며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여 효의 귀감을 보였다. 고종 때에 종2품 가의대부 내부협판의 벼슬을 제수받았다. 국운이 쇠잔하여 가는 시기에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여 경복궁을 중건하자 거금을 희사하여 왕실의 권위를 세우는데 협력하였다.
백진석의 처 여산송씨는 효부 열녀로 소문이 나 전주 향교 유림 60여 명이 연서로 포장을 건의하여 효열 포장을 받기도 했다.
백낙중은 할아버지 규방과 아버지 진석의 효행과 선행을 이어받아 지극한 효도를 실천했다. 이에 전주와 고산의 향교 유생들과 무성서원의 서생들이 연명으로 포장을 건의하여 편액을 하사받았다. 이 편액 “효자승훈랑영능참봉백낙중지려(孝子承訓郞英陵參奉白樂中之閭)”는 현재 전주 한옥마을 학인당 솟을대문에 걸려 있는데 당시 명필 성당 김돈희의 글씨다. 학인당은 전주 한옥마을의 대표적인 한옥으로 현재 종손이 그곳에 거주하면서 지키고 있으며 그곳에서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이는 대대로 계승된 백씨 집안의 효행이 우리 문화를 지켜내고자 하는 민족애로 승화되어 연연히 이어 내려온 것이며 효의 고장 전주의 자랑이기도 하다.
현재 수원백씨 정려각이 서 있는 곳은 조선 시대 전주성 안이었다. 성안에 효자정려각이 서 있다는 것은 대단한 효자이며 대를 이은 효심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전주 구심의 번화가인 객사길을 걸으면서 스쳐 지나가지 말고 수원백씨 정려각을 눈여겨보아 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