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변두리에서 중심지가 된 황방산

전주 주변의 수많은 이야기를 안고 있는 산

작성일 : 2024-01-28 07:45 수정일 : 2024-01-29 08:46 작성자 : 이용만 기자

 

 

 

황방산은 전주의 변방에서 중심부의 산으로 도약한 산이다.

일찍이 조선시대 내로라는 지관이 황방산이 전주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 예언했을 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냥 해본 소리라 여겼다.

 

그런데 그 말이 들어맞아 지금의 황방산은 전주의 한가운데가 되었다. 신시가지라 불리는 전북특별자치도청과 혁신도시 사이에 버티고 서서 전주를 굽어보고 있는 것이다.

 

황방산은 높이 217m의 산이다. 산의 크기로 봐서는 큰 산이 아니다. 전주를 대표하는 산인 완산과 거의 비슷하다.

지금까지 전주를 대표하던 완산의 시대를 벗어나 황방산의 시대가 온 것이다. 황방산 서쪽에는 혁신도시의 불빛이 찬란하고 주변에는 완주, 김제, 정읍, 익산, 군산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요쇄지다.

 

황방산(黃塝山)은 누를 황() 자에 밭 두둑 방() 자를 쓴다. 혹은 삽살개 방()자를 쓰기도 한다. 전주의 북서쪽이 허전하여 전주의 기운이 빠져나가고 북서쪽에서 액운이 들어오기 쉬우니 밤새도록 누런 삽살개가 지키도록 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전주는 동쪽에는 승암산과 기린봉이 지키고 있고 남쪽에는 남고산이 있으며 북쪽에는 건지산이 있어서 전주를 둘러싸고 있는데 서북쪽에는 산이 없이 툭 터저서 불안했던 것이다. 그래서 멀리 떨어져 있는 황방산에 서고사를 지어 전주의 서북쪽을 지키는 방패로 삼았다.

 

황방산 정상에는 여의송계기념비(如意松契紀念碑)라는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커다란 돌 위에 세워져 있는데 비를 받치고 있는 돌이 고인돌이다. 이 산꼭대기까지 와서 고인돌 아래 시신을 묻을 정도이면 꽤나 지위가 높았던 사람이었으리라.

 

 황방산 정상에 서 있는 소나무 지키는 사람들의 모임 기념비

 

여의송계(如意松契)는 소나무 숲을 보호하기 위한 모임이다. 황방산의 소나무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하여 계를 만들어 관리했던 모양이다.

기념비를 고인돌 위에 구멍을 파서 비를 세웠다. 그리고 그 아래 안내판에 황방산에 대한 설명이 쓰여 있다. 황방산의 방자를 땅 두둑할 방()자가 아니라 삽살개 방()자를 써야 옳다고 쓰여 있다. 정작 중요한 여의송계에 대한 설명은 없다. 언제 어떤 사람들이 계를 만들어 황방산 소나무를 지켰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 아쉬움을 남겨준다.

 

이곳 황방산 소나무로 지은 건물 가운데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은 남쪽 기슭에 있는 황강서원과 문학대를 들 수 있다. 

황강서원은 고려 공민왕 때의 학자였던 황강 이문정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요, 문학대는 이문정이 제자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문학대에서 이름을 따온 문학초등학교가  아래 시가지에 있다. 

 

황방산 정상을 중심으로 남단에는 서고산성이 있었다. 황방산성이라고도 불렀다. 서고산성은 동고산성과 남고산성, 구억리산성 등과 더불어 전주를 지키기 위하여 후백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성벽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일부에는 산성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성안에는 만덕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일원사가 자리하고 있다. 산성의 형태는 오각형에 가까우며 성내에서 삼국시대 기와와 도기편이 수집되기도 하였다.

고적 조사자료, 문헌자료에는 성곽의 둘레는 약 420간 정도이며 성곽 대부분이 붕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참 가다 보면 도토리바위가 나온다. 나무 한 그루가 바위를 두 조각으로 갈라놓은 것이다. 안내판에는 바위틈에 도토리 알맹이가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 자라면서 바위가 갈라졌다고 쓰여 있다. 의지가 약한 사람은 이곳에 와서 강한 의지를 배워갈만 하다.

 

 작은 도토리 한 알이 자라면서 바위를 갈라 놓았다는 도토리바위

 

황방산에서 도청이 있는 서곡지구를 환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서곡에 대한 안내판이 서 있다. 황방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삼천이 흘러 그야말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가 서곡이라는 것이다. 서곡이라는 이름을 전라감사 이서구가 지어주었다고 한다. 이서구는 풍수지리와 주역에 밝아 전주에 많은 이야기를 뿌려 놓은 사람이다.

 

정상을 지나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곳곳에 고인돌이 보인다. 오래전부터 황방산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았다는 증거다.

그중 납암정(納岩亭) 주변에 있는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유물로써 양호한 상태로 보존이 되어 있다. 다만 고인돌 받침 한 개가 어긋나 있을 뿐이다.

이 고인돌에는 여러 개의 성혈(性穴)이 파여져 있다. 민가에서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들을 낳기 원하는 부녀자들이 돌을 갈아 가루를 마시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속설에 따라 고인돌을 갈아서 구멍을 낸 것이라 여겨진다.

 

 황방산에는 곳곳에 고인돌이 있다.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길 가운데 작은 기념비가 하나 박혀 있다. 가로 세로 두 뼘도 안 되는 작은 돌이다.

전북대신문 김성기 기자 추모비

1963~1983년이라고 새겨져 있다. 작은 추모비에는 내막이 없다. 그 비가 왜 여기 길바닥에 박혀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스무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간 젊은 학보사 기자를 기념하기 위한 작은 정성이었으리라.

 

황방산 서쪽 등성이에는 서고사가 있다.

서고사도 동고사, 남고사, 북고사(진북사)와 더불어 전주의 사방을 지키는 절로써 건립한 것이다.

서고사는 후백제 견훤왕 17년에 명덕(明德)이 지은 유서 깊은 절이다.

이토록 역사가 깊은 절인데 옛 건물들을 보존을 하지 않고 헐어버리고 개축을 해버려서 생소하게 느껴지는 절이다.

서고사에는 효자천(孝子泉)이 있다.

황방산 기슭에 백 씨 성을 가진 가난한 선비의 어린 아들이 아버지가 죽자 무덤을 떠나지 않고 시묘살이를 했는데 목마름을 덜어주고자 샘물이 솟아올랐다는 것이다.

 

황방산의 서쪽 끝부분에는 효자공원묘지가 있다. 세상살이 다 마치고 이곳에 와서 누워 있는 사람들이다.

그 위의 산등성이에는 일원사 절이 있다. 수많은 부처와 탑을 만들어 절 안에 가득하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부처님상과 탑이 있다는데 12,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1만이라는 숫자는 엄청 많은 숫자다. 그 수만큼의 돌을 쪼아서 부처님상과 탑을 만들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황방산 서쪽 일원사에는 12,000여 개나 되는 부처님상과 석탑이 있다

 

황방산에는 지금도 발굴 중인 곳이 있다.

한국전쟁 때 전주교도소에 갇혀 있던 사람들 중에 이곳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이 많다. 공산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유해는 많이 찾아냈지만, 우리 국군과 경찰에 의해 학살당한 사람들의 유해는 기록들을 없애버려 찾기가 힘들다. 그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있는 것이다.

 

황방산은 작은 산이지만 수많은 이야기를 안고 있는 큰 산이다.

 

 

 
이용만 기자 ym60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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