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승 아래 여덟 명이 줄줄이 과거에 급제한 복받은 터

전주시 팔복동 팔과정을 찾아서

작성일 : 2024-02-01 07:44 수정일 : 2024-02-01 09:51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우리나라에서는 복이 많은 사람이 되라고 이름을 칠복이라 지어준다.

가요 최진사댁 셋째 딸에서도 칠복이가 나온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녀석이 이름 하나로 최진사 댁 셋째 딸을 색시로 맞이했다는 것이다.

 

전주에 팔복동이 있다. 흔히 쓰는 칠복동이 아니라 어찌 팔복동이라 했을까? 일곱 개 복에다 복을 하나 더 얹은 것이 아닐까?

 

형님, 팔복동이 왜 팔복동이라 부르는지는 아시지요? 그런데 팔과정에는 가보았나요?”

거기를 못 가봤는데

그런 지금 가봅시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생각나면 즉시 떠나야 하는 사람,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이다.

 

  팔복동 반룡 마을에 서있는 팔과정  

 

팔복동은 전주부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강을 건너야 했기 때문에 옛날에는 관심이 있는 지역이 아니었다.

1872년의 전주부성의 지도를 보면 어디에도 팔() 자나 복() 자가 들어있는 지명이 없다. 지금의 팔복동 지역에는 신감(新甘), 상리(上里), 추천리(楸川里)가 있을 뿐이었다.

일제강점기 때의 전주부성 지도에도 이동면 구주리, 조촌면 감천리, 유제리, 덕촌리가 보일 뿐 팔() 자나 복() 자가 들어간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1872년 전주부성 지도 중 팔복동 부근 지역

 

그러다가 해방 후 상당한 시일이 흐른 뒤인 1957년에 팔복동 지역이 전주시에 편입이 되면서 이름을 지을 때, 당시에 팔과정에서 따온 팔() 자와 가장 큰 마을이었던 신복리의 복() 자를 따다가 팔복동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신복리는 이곳의 마을 이름인데 팔과정은 무엇인가?

팔과정은 여덟 명의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정자를 말한다.

조선시대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선비 송사심의 제자들이 줄줄이 과거에 급제하였는데 8명이나 되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정자가 팔과정이다.

과거에 급제한 8명을 부성팔현(府城八賢))이라 불렀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다.

 

1. 화곡 홍남립

1606에 태어나 1679년에 세상을 떠났다. 자는 탁이(卓爾)였고 인조 11년인 1633년에 계유 증광시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판교를 지냈다.

 

2. 운암 이흥발

1600년 생이고 1673년에 졸하였다. 자는 유연(悠然), 인조 6년인 1628년 무진 별시 2, 을과(乙科)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사관을 지냈다.

 

3. 서귀 이기발

1602년생에 1662년에 졸하였다. 자는 패연(沛然)이었고 인조 5년인 1627년 정묘 식년시 을과(乙科)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필선을 지냈다

 

4, 이생발

1609년에 태어났는데 1629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겨우 스무 해를 살다 갔다. 과거에 급제는 하였으나 일찍 요절하고 말았다. 자는 시연(時然)이었으며 인조 5년인 1627년 정묘 식년시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5. 추옹 이흥록

1600 생인데 세상을 언제 떠났는지 불분명하다. 자는 성중(成仲)이었으며 인조 11년인 1633년 계유 식년시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목사를 지냈다.

 

6. 만성당 이후선

1609에 태어나 1674년에 세상을 떠났다. 자는 유백(裕伯)이었고 인조 17년인 1639년 기묘 식년시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장령을 지냈다.

 

7. 이순선

1626년 생인데 사망한 해는 분명치 않다. 자는 의경(儀卿)이었고 현종 4년인 1663년 계묘 식년시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판관을 지냈다.

 

8. 서계 송상주

1630에 태어나 1702년에 타계하였다. 자는 문백(文伯)이었고 현종 4년인 1663년 계묘년에 식년시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지평을 지냈다.

 

팔과정은 부성팔현을 기념하기 위하여 400년 전에 세워졌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 흔적이 희미해졌다가 홍남립의 후손이 건의하여 복원된 후 여러 차례 보수작업을 거쳤다. 그리고는 흔적이 사라졌다.

그러다가 2017년 팔과정 명소화 사업을 통해 새롭게 단장을 했다. 전에 팔과정이 서 있던 곳이 어디였는지 확실치 않아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어쩌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잘 잡은 것 같다. 두둑한 언덕이어서 사방이 탁 트여 정자가 들어설 만한 곳이고 팔과정을 받치고 있는 땅 아래 도로에는 커다란 고인돌이 있다.

 

이 고인돌은 본래 황방산 자락에 있었다. 전주시에서 추진하는 노후산단재생사업지구 내에서 발견 조사 되었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장축 480cm이고 단축 370cm 정도로 대규모 고인돌이었다. 돌에는 성혈이 있었다. 조사 당시 쪼개져 분리되어 있었던 것을 하나로 붙였다.

이 고인돌은 팔복동의 선사문화를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어 2017년 이곳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팔과정이 서있는 언덕을 받치고 있는 선사시대의 고인돌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팔과정을 받치고 있는 언덕 밑이라 그랬던지 축대를 쌓을 때 쓰던 돌처럼 전체를 다 드러내지 않고 일부는 흙으로 덮여 있다. 문화재를 취급하는 담당자의 허술한 단면이 보인다.

 

현재 팔과정에 걸려 있는 편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필체다. 팔과정 2층에는 팔과정기와 팔과정중건기 편액이 결려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시멘트 구조물로는 어울리지 않네. 한옥마을로 유명해진 전주의 유적물로는 어울리지 않아.”

그럼 나무로 다시 세울까요?”

누가, 천박사가?”

그러죠 뭐. 돈을 좀 벌어서 그때 세우면 되죠 뭐.”

뭐든지 안 통하는 것이 없는 천선생이 너스레를 떤다. 그래야 할 것 같다. 시멘트 구조물로는 팔과정의 맛이 안 난다.

 

8명의 급제자를 배출한 곳이니 스승도 훌륭하고 제자들도 훌륭하다. 팔복동은 분명 복 받은 땅이다.

팔과정을 둘러싼 마을이 반룡마을이다. 마을 이름에 용 룡() 자가 들어간 마을은 예사 마을이 아니다. 반룡리는 지금부터 400년 전에 반룡서숙(盤龍書塾)에서 공부하던 서생들이 여덟 명이나 급제를 한 마을이다. 그야말로 교육의 터전이다. 이때부터 전주가 교육의 도시로 발돋움을 하지않았나 생각된다.

 

 여덟 명의 급제자를 낸 반룡 마을 안내도

 

현재 이곳 팔복동은 공단이 자리한 곳이니 돈은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시멘트로 발라놓은 팔과정을 다시 세워야 할 것 같다.

팔과정이 서 있는 곳이 전주시 팔복정수장이 있는 곳이니 마실 물도 넉넉하겠고 나무와 목수만 있으면 되겠다. 팔과정이 옛스러움을 듬뿍 안고 다시 세워지는 날에 다시 찾아와 볼일이다.

 

 

 
이용만 기자 ym60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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