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같이 따스한 표정의 얼굴, 이진영 개인전
길게 벋은 전주역 첫마중길 대로에 빨간 여행자도서관이 있고 그 옆에 작은 전시실이 있다.
이곳은 작지만 예쁜 전시실이다.
이른 봄,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쌀쌀한 날씨에 작은 전시실을 들어서면 훈기가 몸을 녹여준다. 실내여서 그러기도 하지만 전시된 작품에서 내뿜는 온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침 이진영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작은 공간에 온통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관객이 많은 것이 아니라 전시된 그림이 모두 사람의 얼굴이다. 환하게 웃는 어린아이가 여럿이다. 생기발랄한 청년들이 또 여럿이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근심 걱정이 저만큼 달아난다.
그림은 사진과는 다르다.
사진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포근함이 그림 속에는 있다. 그림에는 사진에서는 볼 수 없는 세상에 없는 색깔이 있다. 작가의 마음속에서 만들어 낸 색깔이다. 그래서 사진 전시회와 그림 전시회는 다르다.
안내원이 전시된 그림 속에 작가가 있다며 찾아보라고 한다.
내 짐작으로 이 정도의 그림을 그리려면 세상을 제법 오래 살아오면서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이겠거니 하여 제목이 “가을의 미소”인 그림을 가리켰다. 안내원이 고개를 흔든다. 그래서 좀 더 늙어 보이는 그림을 가리켰다. 다시 고개를 흔든다.

두 그림 중 하나가 그림을 그린 작가라 한다. 누구일까?
“이 그림은 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닮았네요.”
“그 사람이 이번 전시회 주인공이에요.”
아직은 젊은 작가다. 안내장에 경력을 쓰지 않은 이유가 젊은 작가여서 경력을 내세우지 않은 것 같다.
둘러본 그림 가운데 “어린이 1, 2, 3, 4”가 있다. 4명의 어린이의 얼굴인데 세상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순진무궁한 얼굴이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저런 때가 있었을까? 모두가 가질 수 있는 표정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에게는 없었던 깨끗한 표정이다.

나에게도 이런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던 시절이 있었던가?
그림 중에는 노인의 얼굴도 있다. 얼굴에는 주름살이 많아도 표정은 하나같이 밝다. 그림 “고단함”은 얼굴과 입가에는 주름이 가득한데 풍기는 인상은 따뜻하다. 늙어서 저런 표정을 지을 수만 있다면 창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겠다.
그림 “가을의 미소”는 환하게 웃고 있는 나이 든 여인인데 살이 통통하게 쪄있고 넉넉하고 풍요로운 자태다. 늙어서는 모름지기 저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시된 그림 가운데는 “빛나는 청춘”도 있고, “멋진 젊음”도 있다. 같은 젊은이라도 “수줍음”에는 더 젊은 여자아이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실물 같다. 옆에 있는 다소 농익은 듯한 “신부의 설레임”과는 다르다.
“해바라기를 들고 있는 소녀”는 환한 해바라기꽃에 지지 않으려는 시샘 많은 소녀의 얼굴이 있고 “숲의 햇살”은 햇살을 받은 다소 신비함이 묻어나는 여인의 얼굴이 있다.

온통 얼굴들로 가득 메운 전시장에는 따스함과 다정함이 기득하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의 얼굴 그리기라 했다. 그런데도 이 전시장에는 모두가 사람의 얼굴이다. 그만큼 실력을 갖추었다는 것이리라.
아직은 젊은 작가인 이진영 화가의 앞날에 영광의 햇살이 비치기를 기대해 본다. 더 크고 넓은 전시장에서 더 많은 작품을 가지고 전시회를 여는 날 다시 찾아가리라 마음먹는다.
이진영 개인전은 3월 5일부터 18일까지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