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사매벌에서 펼친 큰 잔치
현존하는 소설가 중에서 남원뿐만 아니라 전북을 대표하고 있는 소설가 윤영근 원로 작가의 『청암 류광현』 출판기념회가 남원 사매벌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2024년 3월 23일(토) 오후 3시부터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사매면 용북중학교 강당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 회원들을 비롯하여 남원지부 회원들, 용북중학교 동창회 간부들과 동창회원 및 지방 유지들이 참석하여 성대한 출판기념회가 되었다.
출판기념회가 용북중학교에서 열린 것은 책의 주인공 청암 류광현 선생이 세운 학교가 용북중학교요, 윤영근 작가가 용북중학교 4회 졸업생이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설립한 분의 제자가 은사님의 일생을 책으로 엮은다는 것은 희귀한 일이요, 값진 일이다.

소설가 윤영근 작가가 펴낸 "청암 류광현"
출판기념회는 식전 행사만도 3개의 프로그램이 펼쳐졌고 식순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순서를 맡아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먼저 식전 행사에는 김미나 명창의 국악 흥부가가 고수 배분순 명인의 장단에 맞추어 펼쳐졌다. 김미나 명창은 판소리를 열창하기 앞서 특별 이벤트로 송하진 전 도지사의 판소리를 들어보자는 깜짝 이벤트를 제안하여 참가자들이 열열한 박수를 보내는 바람에 송하진 전 도지사의 판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곡명은 ‘사철가’였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
특별 이벤트는 또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 윤영근 작가에게도 ‘각설이 타령’을 청하여 구성진 각설이 판이 펼쳐졌다.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절~씨구 씨구 들어간다. 지화자 졸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이 각설이 타령은 참 슬픈 노래라고 한다.
얼씨구 절씨구의 어원은 900여 회나 외세 침략을 받아 이 나라에는 남자들이 씨가 말라버릴 정도로 수없이 많이 죽었다.
졸지(猝地)에 과부가 된 여인들과, 과년한 처녀들은 시집도 못 가고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가 없었다. 어디를 간다해도 씨를 받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한이 맺혀 하는 소리가 있었으니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졸씨구’였다.
얼씨구(蘖氏求)는 서자의 씨라도 구해야겠네. 절씨구(卍氏求)는 당시 천노 취급을 받던 절간의 중의 씨라도 받아야겠네. 지화자 졸씨구(至下者卒氏求)는 가장 낮은 졸병의 씨라도 구해야겠다는 의미가 담긴 노래라 한다.
각설이타령은 주로 지방 장터를 찾아다니며 문 앞에서 각설이타령을 부르며 구걸을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출판기념회 주인공인 저자 윤영근 소설가의 각설이타령 시연 모습
소설가 윤영근 작가는 오늘날의 남원문협과 남원예총의 터를 닦은 사람이다. 그는 경희대 한의대를 나온 한의사다. 그러면서 문학과 예술과 영화에 관여해 당대의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황해와 김희갑과 가까이 지내면서 함께 연기 활동을 구상했던 사람이다.
어쩌다 남원으로 내려온 것이 남원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덕분에 남원문학과 남원예술이 꽃을 피우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출판기념회는 감동과 열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사회는 이문숙 남원문협 부지부장이 맡아 진행을 하였고 전주에서 역대 전북문협 회장을 맡은 원로 작가들이 대거 참가하여 전북의 잔치가 되었다. 또 용북중학교 제1회 졸업생을 비롯한 2회, 3회 4회... 10회 졸업생과 그 후의 졸업생들까지 참가하여 동창들의 모교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보여줬다.
축사를 맡은 송하진 전 도지사와 소재호 전 전북예총 회장은 용북중학교를 설립하여 이 고장의 수많은 인걸을 길러낸 청암 류광현 선생의 뜻을 거룩하게 받들고 이를 책으로 엮어낸 윤영근 소설가에 대한 노고에 대하여 크나큰 축하의 말씀을 전했다.
현 용북중학교 이사장인 청암 류광현 선생의 넷째 아들 류정수 이사장도 아버지의 거룩한 뜻을 이어받아 용북중학교를 명문학교로 운영해 나가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1949년 '사매 중학원'으로 개원을 하여 1950년 6월 10일 개교한 용북중학교는 70여 년 동안 이 고장의 수많은 인재를 길러내면서 명문 학교의 명맥을 이어왔다.
현재 용북중학교는 학생들을 전국 각지에서 모집하는 자율중학교이며 엄격한 모집 절차를 거쳐 입학이 허용된다. 이곳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타 시·도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졸업 후에는 각자 본래의 거주지의 고등학교를 선택하여 진학할 수 있다.

1950년 개교 당시의 용북중학교 교사 전경
이석래 총동창회장은 ‘청암 류광현 설립자님께 드리는 글’을 통해 그분의 교육자로서의 공적을 소개했으며 윤영창 남원문인협회 회장과 최정주 작가는 윤영근 작가에 대한 공적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윤영근 작가는 인사말을 통해 청암 류광현 용북중학교 설립자의 아버지 류시동 선생이 일제강점기 때에 독립운동가들에게 많은 독립자금을 조달하였으며 아들인 류광현 선생에게 교육사업을 할 것을 부탁하여 이곳에 용북중학교가 세워지게 되었다고 알려줬다.
류광현 이사장은 제6대와 제7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가난하고 힘없는 농민들과 서민들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였다. 그러다가 국회의원을 그만 둔 것은 제3공화국 때에 3선개헌에 반대했기 때문이며 위급한 고비도 많았다고 한다. 그는 올바른 교육자였기 때문에 옳지 못한 일에는 분연히 반대자의 입장에 섰던 것이다.
『청암 류광현』에 실린 국회 발언 내용에 대하여 윤영근 작가는 류광현 설립자가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당시의 국회 속기록을 구입하여 돋보기로 들여다보면서 몇 날 며칠을 일일이 옮겨 적었다고 하였다. 참석한 사람들은 그의 노고에 대하여 박수갈채로 답을 보내기도 하였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작가인 류영근 소설가와 용북중학교 설립자인 청암 류광현 선생의 사제간의 명맥으로 이어진 귀한 출판기념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