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와 신라의 국운을 갈라놓은 남원 아영의 아막성 전투

아막성 유물 국가지정문화재 승격 신청 준비 중

작성일 : 2024-05-02 05:45 수정일 : 2024-05-02 10:54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전북특별자치도의 동부지역인 운봉, 아영, 인월, 산내 지역은 지리산을 끼고도는 고원지대다. 이곳을 황산지역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은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 그리고 가야가 치열하게 대립하던 지역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세 나라의 유물이 곳곳에서 발굴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아영면 성리의 아막성(阿莫城)은 규모는 크지 않는데 역사적으로는 큰 의미를 가진 산성이다.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8호인 아막성은 전북 남원시 아영면 성리에 있다. 아막성은 장수군 번암면과 경계를 이루는 봉화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 정상부와 주변 계곡을 감싼 '포곡식 산성'은 둘레 640m의 자그마한 성이다.

이곳은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 가야 사이에 격렬한 영토전쟁이 벌어진 곳으로 신라에서는 '모산'이라고 불렀다.

성터는 대체로 사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북쪽 성벽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는데 네모 반듯하게 다듬은 돌을 가지런하게 쌓아 정교함을 보여준다. 북문터 부근에는 돌로 쌓은 둥근 우물터가 있다.

 

 남원 아영에 남아 있는 아막성의 일부 

 

백제와 신라 두 나라가 이곳에서 국운을 걸고 싸운 이유는 아막성은 소백산맥 동서를 관통하는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차지함으로써 동서로 진출하는 길목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운봉고원과 장계 분지의 거대한 제철산지를 차지하기 위함이다. 철은 예로부터 국력을 상징하는 요체로써 전북 동부지역에서는 200여 개소의 제철 유적이 발견되었다.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아막성 전투에서 백제가 패함으로써 동쪽으로 진출하려던 계획이 좌절되었으며 신라는 서쪽으로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발굴 중인 아막성 성문터

 

아막성 전투는 일본의 기록에도 나와 있다.

일본서기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백제는 가야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신라를 압박했다. 그래서 주변의 고구려와 왜국을 연합한 신라 공격을 계획했다고 한다. 백제에서는 4만의 군사를 준비하였고 왜에서는 25천의 군사를 규슈지역에 집결시키고 상륙할 배를 준비하였다.

이 계획이 이루어졌더라면 신라에 큰 위기가 닥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변수가 발생했다.

고구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수나라와 돌궐에서 지각변동이 생긴 것이다. 수나라의 지원을 받은 동돌궐이 서돌궐을 침공하여 승리를 한 것이다. 수나라의 돌궐에 대한 지배가 강해지자 이를 고구려의 공격에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고구려는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신라에 대한 공격은 잠시 유보되었다.

 

한편 왜에서는 6026월에 왜군의 총사령관이었던 내목황자가 병석에 눕게 되었다. 자연히 신라에 대한 공격도 보류하게 되었다.

 

연합 공격이 어려워지자 백제 무왕은 단독으로 신라를 공격하기로 마음먹고 6028, 좌평 해수에게 4만의 군사를 주어 신라의 아막성을 공격하였다. 이에 신라 진평왕도 군대를 동원하여 이에 맞섰다.

신라군이 백제의 유인책에 빠져 늪지에서 곤욕을 치르다가 후퇴하였는데 신라 장군 무은이 백제군에게 사로잡힐 위기에 처했다. 그때 무은의 아들 귀산이 동료 추항과 함께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이를 본 신라군이 힘을 얻어 되공격했는데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백제는 동쪽 진출에 큰 타격을 입었으며 신라는 서쪽 진출의 출구를 마련했던 것이다.

 

  아막성에서 발굴된 유물들

 

아막성은 삼국사기 등 문헌 기록에 등장하는 성곽 중 위치가 확인된 몇 개의 성곽으로 한국 고대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삼국사기에 나타난 아막성에 대한 기록은 이렇다.

서기 6028월에 백제가 와서 아막성(阿莫城)을 공격했다. 왕이 장사들로 하여금 역전(逆戰)하게 하여 이들을 대패시켰다. 귀산, 추항이 이곳에서 죽었다.”

                                                 -삼국사기 권 4, 진평왕 24년 조-

 

서기 616년 가을에 백제 왕이 출병하여 신라 아막산성(阿莫山城)을 포위하였다. 신라 왕 진평(眞平)이 정기(精騎) 수천을 보내 이에 거전(拒戰)하였다. 우리 군대가 패하여 돌아왔다.

-삼국사기 권 4, 진평왕 38년 조-

 

아막성은 602년과 616년, 2차례에 걸쳐 백제와 신라의 큰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백제와 신라를 연결하는 길목을 지킬 수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특히 가야 세력을 흡수한 신라의 진출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특히 602년 백제가 신라의 아막성을 공격한 것으로 기록된 것으로 비춰볼 때 602년 이전에 아막성은 신라에 의해 축성되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또 역사적으로 554년 관산성 전투를 승리로 장식한 뒤 신라의 영역확장 과정에서 축성되었을 가능성과 562년 대가야가 멸망한 뒤 신라의 진출을 상정해 볼 수 있다.

 

백제와 신라를 연결하는 길목이자 최대 격전지였던 남원 아막성의 국가지정문화재 승격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남원시는 지난 2020년부터 3차에 걸친 아막성 발굴조사를 통해 신라시대 토기로 추정되는 유물을 다량 확인했다.

남원시는 객관적인 근거 자료 추가 확보에 나섰다. 발굴조사 등을 통해 아막성의 집수시설과 성벽, 주거지 등은 신라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파악하고, 출토유물의 대다수가 삼국사기 등 문헌에 기록된 아막성의 운영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6세기 중반~7세기 초반의 신라 유물임을 밝혀냈다.

 

전북도와 남원시는 지난 2020년부터 이곳에서 발굴조사를 진행, 신라시대 건물지로 추정되는 유구 및 유물을 확인했다. 이에 문화재청에 국가사적 지정을 신청했지만, 문화재청은 주변 유적과의 관계성 및 고고학적 특성과 의미를 좀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며 보완을 요청했다.

전북특별자치도와 남원시는 남원 아막성에서 출토된 신라 유물의 특성과 의미를 토대로 문화재청에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을 신청할 계획이다.

 

 
이용만 기자 ym60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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