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이 흐른 뒤에야 가까스로 인정
5월이다. 사방천지가 푸르름에 가득 싸여 있다.
그러나 5월은 마냥 푸른 계절만은 아니다.
외국의 시에서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5월은 잔인한 달이다.
거기에 5·18 민주화 운동이 있다.
지금 전북대학교 캠퍼스 안에는 '이세종 열사 공원'이 있고 거기에 기념탑이 세워져 있으며 이런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이세종 열사 5·18 민주화 운동 첫 희생자로 공식 인정“
이세종 열사가 민주화 운동 첫 희생자임을 알리는 플래카드
지금까지 5·18 민주화 운동의 첫 희생자는 1980년 5월 18일 오후에 광주시내에서 희생된 민간인으로 알려져 왔었다.
그러나 사실은 5월 18일, 날도 밝기 전에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전북대 이세종 열사가 첫 번째 희생자다.
그러나 당시에는 모든 것이 쉬쉬, 감추어지던 시대요, 광주 사람들이 최초의 희생자는 광주 사람이어야 한다고 우겨서 이세종 열사는 뒤로 밀려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어디까지나 사실이고 이것이 진실인 것이다.
마침내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조사위원회에서 이세종 열사가 5·18 민주화 운동 첫 희생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전주시 송천동에 있는 전라고등학교에는 이세종 열사 기념탑이 서 있고 전북대학교에는 이세종 공원이 있다. 이세종 공원 앞에는 이세종 열사가 5·18 민주화 운동 첫 희생자임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몇 개 걸려 있다.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지 43년이 지난 2023년 12월 15일에야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조사위원회에서 이세종이 5·18 민주화 운동 첫 희생자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이 플래카드는 전북지역 대학민주동문회 협의회에서 내건 플래카드인데 이 협의회에는 전북대, 원광대, 군산대, 전주대, 우석대, 비전대, 기전대, 전주교대, 한일장신대, 방송통신대 등 전북지역 10개 대학교들이 모인 단체다.
거기 플래카드에는 애절한 문구도 있다.
”다시 살아 하늘을 보고 싶다“
당시 전북대 농학과 2학년이었던 스무 살의 이세종 열사의 애절한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이세종 열사의 애절한 바람을 말하는 플래카드
이세종은 당시 전두환 군부 독재에 맞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전북대 학생회관에서 농성 중이었다.
1980년 5월 18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한밤중에 밖에서 대기 중이던 계엄군, 제7공수여단이 전북대로 진입하여 학생회관으로 들이닥쳤다. 완전무장을 한 계엄군은 다짜고짜 농성 중이던 학생들을 구타하면서 끌어내기 시작했다. 이세종은 옥상으로 달아났다. 뒤쫓아 온 계엄군은 옥상으로 피한 이세종을 마구 두들겨 팼다. 그리고 옥상 아래로 던져버렸다.
이 과정에서 이세종이 계엄군에 의해 맞아서 사망을 한 것을 옥상 아래로 던졌는지, 마구 두들겨 팬 후 살아 있는 사람을 옥상 아래로 던져 죽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5월 18일 아침에 전북대 경비원에 의해 학생회관 앞마당에서 죽은 시체로 발견이 된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세종이 스스로 옥상에서 뛰어내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럴 경우 몸에 심한 타박상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세종의 몸에서는 많은 타박상의 흔적들이 있었다.

전라고등학교에 세워진 이세종 열사 추모비
경찰은 단순한 추락 사고로 처리했고 시신은 불태워져 부모님이 계시는 김제시 월촌면 연정리에 매장되었다. 그때 당시에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광주에 '국립 5·18 민주묘지'가 생기고 얼마 후인 1998년에야 이세종도 여기에 안착되었다.
거기에는 희생된 순서대로 안장이 되었다. 그러나 이세종은 첫 희생자로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뒷부분으로 밀려나 있다.
이제 이세종 열사는 5·18 민주화 운동 첫 희생자로 공식 인정을 받고 당시에 광주에서만 있었던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게 되었다.
해마다 이세종 열사가 졸업한 전라고등학교에서는 기념식을 갖고 그의 애국심과 민중 사랑의 정신을 새긴다. 지금 전라고등학교에는 교문을 들어서면 바로 옆에 ”민주열사 이세종 추모비“가 있다.
전라북도에서는 전북대학교 총동창회를 중심으로 전북대민주동문회, 전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북5월동지회, 전북지역대학민주동문회, 전라고총동문회 등이 모두 참여한 ‘이세종 열사 추모사업회’를 구성하여 추진하고 있다.
어언 4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세종 열사도 어느새 60대 할아버지가 되었다. 군사정권은 종식되고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이세종 열사가 바라는 민주화는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의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