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물론 이웃까지 살린 별난 효자 이야기

진안군 백운의 영모정이 안고 있는 효행

작성일 : 2024-05-08 07:30 수정일 : 2024-05-08 19:41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영모(永慕)라는 말은 오래도록 사모함을 뜻하는 말이며 죽을 때까지 어버이를 잊지 않음을 뜻하는 말이다. 주로 부모님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효자에게 쓰이는 말이다.

영모정(永慕亭)이라 함은 이러한 효행을 한 사람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정자를 말한다.

전북특별자치도에는 널리 알려진 영모정이 몇 군데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영모정이 진안 백운에 있는 효자 신의련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영모정이다.

 

진안 백운의 영모정(永慕亭)은 전북특별자치도의 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조선 말기 고종 6년인 1869년에 효자 신의련(愼義蓮)의 효행을 기리고 본받기 위해 세운 정자다.

 

  진안 백운에 있는 효자 신의련을 기리기 위한 영모정 

 

영모정이 있는 곳은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 원노촌 마을이다. 이곳은 거창 신 씨 집성촌이다. 마을 주변에는 느티나무와 상수리나무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고 비사동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계곡을 이루고 있는데 영모정은 이 계곡을 끼고 있다.

 

이 영모정은 특이한 점이 몇 가지 있다.  

다른 영모정은 대부분 기와로 지붕을 얹었는데 기와가 아닌 작은 점판암 판돌을 가지런하게 얹었다. 마루 아래 각각의 기둥 밑에는 거북머리 모양의 둥근 주춧돌을 놓았다.

기둥이 모두 16개인데 정면의 기둥 4개는 아래로 길게 벋어 내려 절벽 위에 정자를 세운 듯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그래서 뒤에서 본 풍경과 앞에서 본 풍경이 다르다. 

영모정 밖에는 영모정이라는 현안을 걸었는데 건물 안쪽 가운데에 영벽루라고 쓰인 나무판과 윤성진의 글을 걸어 놓았다. 영모정에서 가까운 원노촌 마을과 하미마을의 갈림길 옆에는 미계 신의련(美溪 愼義蓮) 을 기려 세운 유적비와 효자각이 있다.

이 영모정은 20089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누리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특이하게 지붕을 얹고 기둥을 세운 진안 백운의 영모정

 

이곳 영모정에는 효자 신의련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세상이 어지러워졌을 때 효자 신의련은 병든 아버지를 간호하고 있었다. 마침내 왜적들이 이곳 진안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였다. 백운에 이른 왜적들이 신의련의 아버지를 죽이려 하자 신의련은 몸으로 아버지를 감싸며 아버지만은 살려 달라고 애원하였다. 그의 효성에 감동한 왜장이 신의련에게 아버지에 대한 효성을 보이면 살려준다 하였다. 신의련은 손가락을 깨물어 효자 신의련이라고 썼다.

 

 효자 신의련을 기리기 위한 효자각

 

왜장이 혈서가 쓰인 종이에 불을 붙였는데 종이만 타고 글자는 타지 않고 그대로 남아 하늘로 올랐다. 이것을 본 왜장이 효성에 감동하여 마을 입구에 이렇게 써 붙였다.

이곳은 효자가 사는 곳이니 침범하지 말라.”

이로 인하여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많은 사람이 이곳으로 피난을 오게 되었는데 그 수가 5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신의련의 효행이 아버지를 살리고 수많은 이웃들을 살린 것이다.

 

부모에게 정성을 다한 효자는 많다. 그러나 이웃들의 목숨까지 살린 효자는 많지 않다. 그래서 진안 백운의 영모정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용만 기자 ym60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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