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는 작아도 조상의 지혜가 가득 담긴 둠벙
둠벙을 아시나요?
어렸을 때에 물방개가 둥둥 떠 있고 우렁도 잡고 미꾸라지도 잡았던 논 옆에 있던 작은 연못.
다랑이, 다랑이 열 다랑이가 모아져야 논 한 마지기가 되었던 산비탈 천수답 논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어 존재감도 없었던 둠벙.
그러나 이곳에는 많은 물고기와 수초가 어울려 또 다른 세상을 만들었던 곳이다. 어린 시절 논에 가면 이곳을 맨 먼저 가보았던 곳이다.
“형님, 제가 요상스러운 기삿감을 하나 주지요. 둠벙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완주군 고산면 오산리에 ”둠벙“에 대한 안내문이 서있습디다.”
잠시 뜸했던 그가 내 옆구리를 찌른다.
그는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님.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고산면 오산리 175-2번지. 거기에 둠벙이 하나 있는데 완주군에서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고 알려준다. 그 안내판에 따르면 면적은 956제곱미터인데 오래 전부터 비가 오지 않는 갈수기에 농업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한다.
거기에는 ‘둠벙 이야기’라는 제목하에 둠벙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다.
둠벙은 빗물과 산에서 내려온 물, 그리고 지하수가 모여 자연 습지가 이루어진 작은 연못으로 우리 조상들은 이 둠벙을 이용하여 농사에 필요한 물을 저장하거나 여름철 홍수를 조절하였다고 한다.
다양한 수생식물이 자라면서 물을 깨끗하게 정화하고 어류 및 수서생물들의 피난처와 서식처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농촌 생테계의 중요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완주군 고산면 오산리에 있는 둠벙에 대한 안내판
둠벙은 생태 환경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둠벙은 주로 천수답에 의존하여 벼농사를 짓던 시절, 임시로 용수를 가두어 두는 물 저장고를 이르는 말인데 단순히 물만 저장되었던 곳은 아니고 거기에 많은 생물들이 모여들어 특별한 서식처를 이루면서 환경을 지켜 나갔던 것이다.
둠벙은 물이 마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물이 땅에서 나오든지, 다른 곳에서 흘러들어 오든지 지속적으로 일정하게 유지됨으로써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환경조건을 만들어 주어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였다. 대표적으로 무척추동물, 수서생물, 수서곤충, 기타 다양한 생물이 논과 습지를 경계로 하여 삶을 넘나들며 생명을 퍼뜨려 다양한 생태 환경을 만드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생물들의 놀이터이자 삶의 터전으로 생태 시스템이 잘 지켜지고 있는 곳 중 하나가 둠벙이다.
천판욱 선생 이야기로는 늦가을이 되면 논에 있던 미꾸라지가 방죽으로 들어가서 밑바닥 땅에 숨어들어가 겨울을 넘긴다는 것이다. 미꾸라지의 겨울 피난처가 방죽이라는 것이다. 그는 아는 것도 많다.

우리나라에는 곳곳에 둠벙이 있어 농사 일에 요긴하게 쓰였다.
양수기가 없었던 시절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둠벙은 생태계의 보고였다. 과학적으로도 연구할 가치가 있는 곳이다. 과거 선조들의 현명한 물 이용 방법으로 현재에도 우리가 배워야 할 가치가 있는 농업 유산 중 하나이다. 습지가 발달하기 이전 습지의 기본 모형이 둠벙이었던 것이다.
둠벙은 대체로 크기가 작다. 보통 지름이 4~5m, 깊이가 1~2m 정도부터 조금 넓은 것과 깊은 것이 있다. 연못이라고 부르기엔 규모가 작아 둠벙이라 부른다. 그러나 근방의 몇 마지기 정도의 논에 물을 대기엔 충분하다. 먼 곳에서 물을 길어오기보다는 바로 그 자리에서 나온 물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겠다는 삶의 지혜가 스며 있는 것이다.
최근 겨울에도 논 또는 논 주변에 둠벙처럼 물을 남겨 둘 경우 생태적으로 장점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은 겨울철에도 논 주변 웅덩이에서 물을 빼지 않는다. 이것을 ‘동계담수’라고 부르는데, 이런 농법이 농사 또는 생태학적으로 이로운 점이 많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겨울철에 물을 대놓은 농가를 찾아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더니 실지렁이 등 일부 무척추동물의 수가 느는 등 생물 개체수와 다양성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둠벙에는 숨은 이야기도 많다.
나 어렸을 때에 이웃집 누나가 둠벙가에 있는 우렁을 잡다가 미끄러져 둠벙 속으로 빠져 허우적 거리는 것을 발 씻으러 왔던 아저씨가 살려내기도 했다.
제주도에는 용이 살았다는 '용둠벙'도 있고 전라남도 진도에는 삼별초가 몽고군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지게 되자 궁녀들이 둠벙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궁녀둠벙'도 있다.

둠벙은 물과 함께 다양한 생태계가 상존하는 곳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둠벙들이 많이 없어졌다. 물을 남겨두고 싶어도 물 자체가 부족해 방죽이 마르는 경우도 있고, 경지정리를 하면서 없애버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더 많은 물을 논에 공급하기 위해 도랑에 콘크리트를 깔아 수로를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지하로 스며들어가는 물이 줄어들어 지하수가 줄어든 것이다. 지하수는 둠벙에 물을 공급하는 원천이기 때문에 둠벙이 점점 말라가는 것이다.
최근에는 둠벙이 지닌 생태적 가치가 다시 주목을 받게되자 이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둠벙을 다시 만들고 있다. 이를 '인공둠벙'이라 한다. 전라남도와 전남농업기술원에서는 인공둠벙 연구에 나서 2007년부터 인공 둠벙을 만드는 농가에게 지원금을 주며 적극 지원했다. 그 결과 2007년 강진, 담양 등 8개 시군에서 12개밖에 새로 생기지 않았던 인공 둠벙이 2009년 이후 매년 수십 개씩 늘어나 최근에는 200여 개로 늘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기지가 담긴 둠벙을 복원하여 허비되는 물을 이용하고 생태계도 복원시키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거두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