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두개골이 기념관을 만든 녹두관

일본을 거쳐 다시 돌아온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

작성일 : 2024-06-23 12:43 수정일 : 2024-06-24 08:37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전주 완산칠봉 옆의 곤지산 투구봉에는 별난 기념관이 하나 서 있다. 100년도 더 되는 조선 말기에 전라도 땅에서 일본 북해도를 거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두개골 한 개가 기념관을 만든 것이다.

“전주 동학농민혁명 녹두관

이름도 모르는 동학농민혁명군의 유골이 안치된 기념관의 이름이다.

 

 이름 모를 동학농민혁명군의 유골을 안치한 전주 동학농민혁명 녹두관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622일 오후.

녹두관을 찾아 나섰다.

비가 내리는 탓이었을까? 관람객이 없는 한가한 시간이었다. 관리인 겸 해설사인 박병덕 선생이 나를 반겼다. 그는 커피 한 잔을 들고 휴게소에서 나와 마주 앉았다. 그가 녹두관이 만들어지게 된 내력을 자세히 설명하고 녹두관에 안치된 한 동학농민혁명군의 두개골에 대한 해설을 들려준다.

그리고 핸드폰에서 녹두관에 관한 영상 자료를 더 보여준다. 우연히 이곳을 찾은 방문객이 만들어 준 자료란다. 

 

 전주 동학농민혁명 녹두관에 대한 해설을 하고 있는 박병덕 선생

 

그가 자료를 통해 해설해준 내용은 이러했다.

 

녹두관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하듯이 여기에 안장된 유골은 조선 말기 동학농민혁명군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130년 전인 1894년 갑오년에 전라도 일대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군을 이끌던 지도자의 유골이다. 이 유골은 일본 북해도대학 인문학 표본실 창고에서 발견되었는데 발견 당시 유골에 동학당 수괴(東學黨 首魁)”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함께 발견된 문건에 전라도 진도에서 효수된 동학군 지도자라는 것을 밝혀 놓았다.

 

어떻게 한국의 진도 사람의 유골이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지금 전주 완산동 녹두관에 안장되어 있을까?

 

동학농민군 지도자로 활약하던 그는 여러 전투에 참가하고 동학군 마지막 저항지였던 진도로 내려가 활약을 계속하던 중 1906920일에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진도에서 효수된 후 그의 목이 일본 북해도대학으로 보내졌다.

 

당시에 북해도대학의 전신인 삿포로농업학교가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일본인의 우월성과 조선을 일본화하기 위한 내선일체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한다. 조선은 일본과 동질 민족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한국에서 조선 사람의 두개골을 수집해서 가져갔다는 것이다.

 

세월이 흐른 후에 당시 북해도대학인 홋카이도대학 문학부 인류표본실 표본 창고의 가장 높은 선반에 놓여 있는 상자를 내려서 펴보았더니 두개골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유골에 동학당 수괴(東學黨 首魁)”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고 메이지 39(1906) 920, 진도에서 효수된 동학당 수괴의 머리라는 설명이 있었다.

 

 '동학당 수괴'라는 글자가 뚜렷한 유골

 

그런데 두개골을 수습한 사람이 사토마사지로 삿포로농업학교 졸업생이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통감부 기사로 한국에서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유골을 공개했고 보도가 되었다.

이런 사실은 홋카이도대학 이노우에 가쓰오 사학과 교수가 밝힌 내용이다.

마침내 홋카이도대학에서 발견된 두개골이 동학군 지도자의 머리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한국 언론에서도 보도가 되었고 정읍시에 본부를 둔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중심이 되어 두개골 한국 반환 운동이 일어나 1995725, 한국으로 반환되었다.

함께 반환된 5개의 유골은 북방 소수민족인 아이누족 원주민의 유골로 밝혀졌다. 일제는 자기들의 우월성을 나타내려고 주변국의 유골을 함께 연구했던 것이다.

 

일본에서 발견된 동학군 유골과 설명서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진도에서는 진도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발족시키고 두개골이 진도의 동학 농민 지도자 박중진의 유골이니 진도에 안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DNA 검사 결과 박중진의 유골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자 정읍시에서는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있는 정읍에 안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김제시에서는 전봉준 장군 최후 전적지인 금구 구미란 전적지에 안장해야 한다고 하였고 전주시는 동학혁명 유적지인 완산공원에 안장해야 한다고 나섰다.

이로 인해 유골은 갈 곳을 잃은 채 전주역사박물관 지하실에 임시 보관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유골을 보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 전주시에서는 동학농민혁명 125주년을 맞아 동학농민혁명 유적지인 완산칠봉에 연결된 곤지산 투구봉에 '전주 동학농민혁명 녹두관'을 짓고 201961일에 유골을 모시게 되었다.

 

  녹두관에 안치된 동학농민혁명군의 지도자의 묘

 

박병덕 선생은 동학농민혁명군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었다. 당시에 일본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동학군이 서울까지 진격했을 것이고 그들이 내건 폐정개혁안 12개 조항이 실시되고 전국적으로 집강소가 설치되었다면 우리나라는 일찍이 개혁이 이루어져 백성을 위하는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의 역사가 없었을 것이라 한다.

 

그는 여기에서 바라보이는 남고산성의 만경대 암각서에는 정몽주의 우국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오목대와 이목대에 얽힌 이야기도 곁들여 들려 준다.

 

전주 동학농민혁명 녹두관은 완산칠봉 옆의 곤지산 투구봉 완산꽃동산에 있다. 꽃구경 오거나 산책길에 안내판을 보고찾아올 수 있다. 전주시 완산구 동완산동 산 124-9번지다. 

월요일을 제외한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오후 6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입장료 없이 무료다. 더 설명을 듣고 싶으면 박병덕 해설사를 찾으면 친절하게 잘 알려준다.    

 

녹두관 휴게실에서 들려주는 박병덕 선생의 이야기는 비 내리는 6월의 여름을 더욱 촉촉이 적셔주고 있다.

 

 

 
이용만 기자 ym60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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