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사람들의 인정과 숨결이 깃들어 있다
전주역사박물관은 국립전주박물관 옆에 있다. 웅장한 국립전주박물관이 있어서 존재가치가 다소 위축되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전주 사람들의 인정과 숨결이 깃들어 있고 전주다움이 있다. 그래서 전주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들려야 할 곳이다.
전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땅은 현재의 대한민국을 이어오고 있는 정통성을 간직하고 있는 땅이다. 삼한 시대에 이 땅에서 살던 마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마한이라는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일어났던 곳이다.
우리나라의 시조인 단군이 세운 고조선이 기자조선을 거쳐 이어오는 동안 위만의 침입을 받아 나라가 위태롭게 되자 고구려 준왕이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정착한 곳이 마한 땅이다.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한(韓)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하여 마한(馬韓)을 거쳐 오늘날의 대한민국(大韓民國)이 되었다.
이 땅은 단군이 세운 고조선의 정기가 서린 곳이고 고조선 사람들의 피가 흐르고 있는 땅이다.

전주역사박물관 전경
전주역사박물관은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전주의 역사를 바탕으로 조성한 박물관이며 전주시 완산구 쑥고개로 259번지에 자리 잡고 있다. 국립전주박물관 앞이다.
전주역사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5층부터 구경하면서 내려오라고 안내한다.
5층에 이르면 먼저 “조선의 3대 도시 전주”가 눈에 띈다.
전주가 3대 도시였다고?
놀라운 마음으로 들여다보니 전주는 조선 제일의 곡창지대를 끼고 있어 물산이 풍요롭기가 한양을 방불케 하였으며 호구 수가 20,947호에 달해 한양, 평양에 이어 세 번째 큰 고을이었다. 당시의 전주 인구는 72,505명에 달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3대 도시였던 당시의 모습을 그린 전주성
전주는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정착한 곳으로 송천동 사근리 유적지와 효자동 봉곡리, 장동 등에서 구석기 시대의 유물을 발굴하기도 하였다.
삼한 시대 때는 마한의 땅으로 10여 개의 소국이 존재했으며 전주는 부사분사국이 있었다. 삼국 시대에는 백제에 속해 있었으며 익산 왕궁리는 왕궁이 건립되어 있었다. 통일신라 때에 9주 5소경을 둘 때, 전주에는 완산주가 설치되어 있었다.
전주(全州)라는 지명은 신라 경덕왕 16년인 757년에 지명을 한자어로 바꾸면서 완산주를 전주로 개명하였다.
그 후 900년에 견훤이 후백제를 세워 수도로 삼았으며 왕궁의 흔적들을 남겼다. 고려 시대에는 성종 때 전국을 12목 체제로 개편하면서 전주목이 되었다. 현종 9년인 1018년에 전주권역 강남도와 나주 권역 해양도를 합하여 전라도라 하였다. 전라도란 전주와 나주의 첫머리를 딴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태조 이성계의 본향으로 조선 왕조의 발상지로 주목 받은 성스러운 고을이었다.
전주역사박물관은 2000년 전주향토사박물관으로 시작하여 전주역사박물관으로 개명하였으며 오늘날은 스마트 전주역사박물관으로 개관하고 있다.
전주역사박물관에는 상설전시장으로 전주역사실, 전주문화예술실, 동학농민혁명실이 있으며 영상실과 온라인박물관이 있다.
자료실에는 전주역사박물관 도록을 비롯하여 천년 전북의 역사 문화, 근현대 전주의 도시 풍경과 전주 사람들의 일상. 조선 태조 유적, 근대 전북 120년, 다시 꽃 피는 선화당 회화나무 등 많은 서적들이 있고 소장품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민력, 완산지, 간재선생 척독 등이 있는데 전라북도 금구군 낙양면 장편리에 살았던 허몽이라는 사람의 호적표도 있다.

전라감사와 감영 이속들의 실제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사진
영상실 앞에 서면 온 벽면을 다 차지하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전주의 역사를 시물레이션으로 볼 수 있다. 오래된 옛날의 전주 풍경을 다시 볼 수 있고 필요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두면 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실에는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으며 전주문화예술실에는 여러 가지 문화에 대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도 있다.
오랫동안 전주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전주역사박물관에 가서 이것저것 둘러보면서 자기가 살아왔던 전주의 풍치에 젖어 깊은 감회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