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 남아 있는 일본 잔재 유물
전주시민의 휴양지 1번지로 꼽히는 덕진공원에 가면 멋진 정자가 서 있다. 정자의 이름이 취향정이다.
그런데 그 정자가 일제침략기에 친일파 박기순이 자기 회갑기념으로 세워놓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박기순은 일제강점기에 중추원참의, 전주 농공은행장 등을 역임하면서 호남평야의 쌀을 군산과 인천에 내다 팔아 큰 이득을 얻었고, 그 돈을 기반으로 삼남의 비옥한 토지를 사들여 30만 평의 토지를 가진 ’땅부자‘가 되었다.
박기순은 조선총독부의 비호 아래 신도시 및 역세권 개발의 혜택을 누렸다.
전주경편철도설치 기성회 회장을 맡아 전주-이리간 경전철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1919년 3∙1운동 저지를 위해 전북자성회를 조직하여 전주지부 지부장을 역임했던 친일파다.

덕진공원 취향정은 친일파 박기순이 지어놓은 정자다
일본 잔재 유물이란 일제강점기 때에 만들어진 유형, 무형의 유산을 말한다. 그리고 일본제국주의에 빌붙어서 활개를 치던 친일파가 만들었거나 그들을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산을 말한다.
또 일제의 식민 통치를 찬양하고 전쟁 동원을 선전하기 위해 친일파인 친일 반민족행위자들이 생산한 유형, 무형의 유산을 말한다.
친일 잔재의 유형으로는 인적 잔재와 물적 잔재가 있다. 인적 잔재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에 부역한 친일반민족행위자와 그와 학연, 지연, 혈연 등 관계를 맺는 모든 방법을 통해 맺어져 이해관계를 같이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친일 비호세력을 말한다.
물적 잔재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에 부역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매국, 배족 활동의 대가로 형성한 친일 재산과 조선총독부 등 식민 통치 기관과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일본인의 재산, 친일 기업, 단체,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부당하게 취득한 모든 형태의 자산 또는 국가가 관리했으나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은 조선총독부 및 식민통치 기관과 재조일본인의 자산 등 적산을 뜻한다.
유형의 친일 잔재는 일본제국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조성한 시설물과 선전 조형물을 말하며, 식민통치기관 건물, 은행, 공장 등 상업 산업시설, 방공호, 활주로, 땅굴 등 군사시설, 황국신민서사탑(皇國臣民誓詞塔) 팔굉일우탑(八紘一宇塔) 내선일체탑(內鮮一體 塔) 보국탑(報國塔) 등 국책 선전 기념탑비, 신도(神道) 정토진조(淨土眞宗), 신사와 같은 일본 종교 관련 시설, 승전비 충혼비 등 전쟁 기념물, 동상, 흉상, 송덕비, 공덕비 등 일본인 및 친일 조선인 찬양 조형물 등이 있다.
전주시에 남아 있는 유형의 친일 잔재 유물은 약령시와 유곽 거리, 금융조합, 소학교 정원석 등이 있다.
전주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무 유물
1. 전주금융조합
전주 팔달로와 기린로 사이, 한때 전주의 번화가였던 동문길에 선각사가 있다. 이곳이 일제침략기에 세워진 전주금융조합이다. 1927년에 공사를 시작해 1930년에 조선금융조합연합회 전북지부 건물로 사용되었다.
당시 전주에는 조선식산은행, 무진주식회사, 조선상업은행, 전주금융조합, 완산 금융조합, 남완산금융조합과 이 건물에 있던 조선금융조합연합회 전북지부까지 모두 7개의 금융기관이 있었다.
이 건물은 해방 이후 농업협동조합 건물로 사용되어오다 2001년부터 사찰로 사용 중이다. 지금은 선각사라는 표찰이 붙어있다. 콘크리트 2층 건물로 건물 외벽 기둥과 연결된 4개의 굴뚝이 준공 당시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동문사거리 선각사는 일제시대 전주금융조합이었다.
2. 전주 약령시 창립비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에서 완산교 사이에 서 있는 전주 약령시 창립비는 약령시 창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비석에는 회장 박기순, 부장(副長) 전(前) 참사 이강원, 전북도평의원 오키 료사쿠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가운데 이강원은 전주군 참사, 전라북도 참사 및 전주교풍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오키 료사쿠는 1907년에 전주에 정착하면서 전주상공회 회장, 전주비료회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친일 잔재다.
3. 전주 약령시 박계조 기념비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을 지나 완산교 쪽으로 가다 보면 현재 전주시보건소 맞은편에 있다.
전주 약령시(藥令市)는 조선시대부터 약재를 거래하는 시장으로 대구 약령시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약령시였다. 그러던 중 한일병합 이후 폐지되었다가 1923년 전주약령시기성회가 조직되면서 다시 개설됐다.
개설 이후 점차 성장세를 보였으며 1932년 가을 전주 약령시 판매액이 57만 6천여 원의 거액에 달할 정도로 정점을 이뤘다. 이 당시 박계조는 약령시 개설 이후 약 10년간 약재 생산지를 사비로 시찰하는 등 전주 약령시 발전을 위한 활동을 활발히 했다.
또 전주약령시영성회(全州藥令市永成會)의 총무를 맡는 등, 전주 약령시의 중심인물로 손꼽혔다. 전주 약령시 박계조 공적 기념비는 전주약령시영성회에서 건립하였다.
4. 전주 유곽 거리 출입구 표시석 기둥
전주시 완산구 다가동 전주 서문교회 뒤쪽에 두 개의 돌기둥이 있다. 이 돌기둥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유곽이 있었다. 유곽은 몸을 파는 사창가를 말한다.
전주에 진출한 일본인들을 상대하던 전주 최초의 유곽은 전주부성 서문 부근의 성벽을 허물고 조성되었다. 전주시 다가동 3가 중앙길 174번지와 156번지 사이 골목 앞에 2미터 간격을 두고 쌍으로 서 있는 돌기둥이 그것이다.
이 돌기둥은 1916년 10월 31일까지 운영되었던 유곽의 출입구 표시석이다. 이후 진북동으로 유곽은 이전해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10년이 넘은 표시석은 여전히 서서 이곳이 일제 강점기 최초의 전주 유곽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전주 서문 부근의 유곽거리를 상징하는 두 개의 돌기둥
5. 전주 심상소학교 정원석
전주심상소학교는 지금의 전주초등학교를 말한다. 이곳의 정원석은 학교 안에 세워진 봉안전 주변에 세웠던 표지석이다. 일제는 황국신민화 교육을 목적으로 전주심상소학교 교정에 일본 천왕의 사진을 보관한 봉안전을 건립하였다.
이 표지석들은 인애원(仁愛園), 지성원(至誠園), 대화원(大和園), 충후원(忠厚園)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2006년 4월 23일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전주초등학교 교정에 있던 표지석들을 전주역사박물관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6. 전주 다가교 난간 위의 석등
다가공원을 가기 위해 전주천을 건너가는 다리가 다가교다. 다가교 난간 위에 두 개의 석등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에 다가공원으로 신사참배를 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비춰주기 위하여 만든 석등이다. 그때의 다리가 아니고 새로 넓게 놓은 다리지만 석등만은 버리지 않고 그대로 붙여놓았다. 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7. 덕진연못 취향정
취향정은 전북지역 대표적인 친일파인 박기순이 자신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공원 내에 있는 친일 잔재물로는 최대교 동상, 취향정, 취향정기, 취향정 내 간판 등이 있다. 일제 잔재물인 취향정과 최대교 동상 주변은 잔디가 정갈하게 정리되어 비교적 깨끗하고, 취향정 위를 올라가는 계단에는 '신발을 벗고 가라'는 경고문까지 붙어있는 등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
또 최대교는 일제 강점기 검사로 재직하며 해방 전 독립운동가 송병하 등을 기소, 징역형을 받게 해 친일파로 분류되어 있는 인물이다.
전주시민들 뿐만 아니라 외지인들도 즐겨 찾는 덕진공원 안에는 친일 잔재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전라북도 친일 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전주시에 존재하는 친일 잔재 27건 중 6건이 덕진공원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8. 이두황 묘
전주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기린봉 아래에는 대표적인 친일 인물인 이두황의 묘와 묘비가 큼지막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두황은 동학농민혁명군을 전주에서 대패시키고 많은 동학군을 살육한데 이어 명성황후 시해에도 가담한 인물이다. 전라북도 관찰사, 전라북도 장관을 지내며 많은 친일 행각을 벌였다. 지금도 이두황 묘에는 매국노에 대한 단죄 팻말이 무수하고 묘 아래 큰길에는 이두황 단죄비가 서있다.

기린봉 아래에 있는 이두황 묘에는 규탄의 팻말들이 많다
전주에는 아직도 일제의 잔재로 남아 있는 건물, 시설, 기념탑과 시념비, 신사, 동상, 공덕비 등 친일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다. 한때는 일본 유물을 청산하는 일을 하기도 했는데 그것을 청산할 것인가, 보존할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아픈 역사도 우리 것이요, 부끄러운 유물도 우리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