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이창규 개인전
전주 시내 한복판, 젊은이들의 거리인 객사 거리에 기린미술관이 있다.
거기에서 열리고 있는 “제20회 이창규 개인전”에 가면 ‘생성과 소멸 그리고 순환’을 볼 수 있다. 사람마다 살아온 길이 천차만별이지만 이창규 개인전에 오면 내 인생길이 어디에 있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일단 환하고 화려한 분위기에 기분이 좋아진다. 큼직큼직한 작품들이 밝고 강한 색채로 시선을 끈다.
한 번 보고 지나가기에는 무언가 아쉬운 여운이 남는다. 추상화가 풍기는 특징이다. 작가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다. 훤칠한 외모와 밝은 빛이 도는 얼굴의 소유자인 이창규 화백은 그림에 담긴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20회 이창규 개인전 전시장 입구. 오른쪽 멀리 보이는 사람이 이창규 화백이다.
보이는 대로 그리면 그리기도 수월하고 보는 사람도 이해하기 쉬울 것이지만 그것을 단순화하고 형상화하여 표현하는 추상화는 제작 과정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몇 배의 노력과 고통이 따름을 공감한다.
전시 작품 가운데 「생성과 소멸 그리고 순환」이 있다. 같은 제목의 그림이 무려 12편이나 된다. 생성과 소멸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존재 과정이다. 그것을 이어 주는 것이 순환이다. 눈에 보이는 겉만의 순환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순환도 포함된다. 생명체뿐만 아니라 정신세계에까지 이른다.
「생성과 소멸 그리고 순환」 작품은 조용하게 물이 흐르듯이 그려진 「생성과 소멸 그리고 순환 1」에서 출발하여 점차 달리고 뛰고 소용돌이치는 격한 표현으로 갔다가 안정되듯이 여백이 많은 「생성과 소멸 그리고 순환 12」로 온다.
어느 작품도 설명은 없다. 유심히 바라보면서 각자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생성과 소멸과 순환을 끄집어내어야 한다.

전시 작품 앞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이창규 화백
전시회 작품 가운데 「텅 빈 충만」이 있다. 이 아이러니한 제목의 작품은 불교적이다. 거기에 범종과 법고, 목어, 운판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불전 4물이다. 사찰을 깨우고 세상을 깨우는 데 쓰이는 기구다.
「텅 빈 충만」 4개의 작품에는 여백은 없다.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충만’은 있는데 ‘텅 빈’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림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도 보아야 함을 말한다.

이렇게 꽉 차 있는데 어디에 텅 빈 충만이 있을까?
「깨달음」 작품이 8편 있다. 무엇을 어떻게 깨달으라는 설명은 없다. 그림 앞에 서서 눈과 마음을 동원하여 깨달음을 얻으라는 것이다.
작품 속에는 해와 달과 물과 바람이 있다. 산도 있고 물고기도 있다. 울안에 갇혀 있는 좌선을 한 작가의 모습도 있다. 깨달음은 스스로 얻는 것이라는 묵시가 아닐까?
한쪽에는 인드라망 작품이 세 편 있다. 인드라망은 그물망이다. 얽히고설킨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세상이 여기 있다. 작품 한가운데는 초연히 앉아 있는 작가 자신이 있다. 아무리 얽히고설켜도 부처님처럼 앉아 있는 작가 자신에게는 그물망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전시회의 작품 곳곳에 초연한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좌선하고 앉아 있는 형상이다. 도통하고 달통한 모습이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들이 거기 있다.
흥에 겨워 춤추는 모습도 보인다. 작가의 모습이라 한다. 인생 말년에 춤추고 기뻐할 수 있다면 세상을 잘 살아온 것이다.

많은 여운을 안겨 주는 전시장에 전시된 작품들
이창규 화백은 원광대학교 대학원 화화과를 졸업하고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학장과 원광대학교 미술관장을 지냈으며 미국 U.C.L.A 미술대학 교환교수를 지냈다. 현재에는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그는 미술 공부를 하려고 대학에 들어왔을 때 제일 먼저 계획한 공부가 세계 미술 역사의 흐름이었다. 그는 한국 미술사, 중국 미술사, 서양 미술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중 중국 미술사 속에서 송나라의 화가이며 시인인 소동파의 "퇴필여산 미촉진(退筆如山 未促珍) 독서만권 시통신(讀書萬卷 始通神)"이라는 말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그림을 그리다가 닳아져서 내버린 붓이 동산만큼 쌓인다고 훌륭한 그림이 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책을 읽고 풍부한 정신적 힘을 갖추고 그림을 그릴 때 비로소 신격에 이른다.”
노련한 기능과 정신적 힘을 두루 겸비해야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인 것이다. 그는 이 화론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어 좌우명으로 삼고 그림 제작에 임하고 있다.
그는 1970년~80년대의 구상화를 주로 그렸고 1990년대에는 반추상화를 그렸으며 2000년대부터는 추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작품의 주제를 대부분 내 삶의 이야기나 깨달음 속에서 선택하며 소재는 한국 전통문화의 정수인 전통 건축 궁궐과 사찰의 기둥머리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 부분을 단순화하거나 추상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는 내적 체험이 반영된 추상화를 그릴 때 여시아관(如是我觀)-나의 주관으로 보고 느낀 어떤 심상, 즉 마음으로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한다고 한다.
아직은 무덥고 지루한 여름이다.
여름 내내 눅눅해진 마음을 가을 하늘처럼 맑고 푸르게 변환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객사 거리, 기린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제20회 이창규 개인전”을 찾아가 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