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스토리 33: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되는 코칭을 해야 한다.
지금도 생생하다. 빛이 얼마나 밤길에 중요한지 알게 된 경험을 난 국민학교 (초등학교) 4학년때 했다. 내가 살았던 곳은 아주 시골이었다. 동네 이름도 촌냄새가 풍기는 '괴목'이다.
옛날에는 결혼식을 집에서 했었다. 가까운 친척의 결혼식이 ‘괴목’에서 30리 떨어진 ‘계월’에서 있었다. 정말 정말 시골인 '계월'이었다. 결혼식을 하기 전날에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신부의 머리를 만질 미용사를 안내하는 것이었다.
미용사가 순천에서 괴목에 도착했다. 문제는 오후 늦게 도착한 것이다. 계월로 직접 가는 버스가 없었다. 괴목에서 있는 완행버스를 타고 '계월'과 가까운 '업치기'에서 내렸다. 거기서부터는 10리를 걸어가야 한다.
큰 일이 생겼다. 버스에서 내리니 밤이 되어 깜깜했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두려웠다. 시골길을 걸어 그 미용사와 함께 '계월'까지 가기엔 불가능했다. '업치기' 부근에서 불빛을 보고 찾아 들어간 곳은 어떤 집이었다.
"계월에 가서 사람을 보낼 것이니 미용사가 잠시 있으면 어떨까요?"
그 집 주인은 잠시 있기를 부탁하니 허락해주었다.
'업치기'에서 '계월'까지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가는 11살짜리의 모험이 시작되었다. 그 날은 달빛도 없었다. 전기없던 그 시절엔 렌턴도 귀했다. 오직 두 눈만 의지하며 더듬더듬 걸었다.
"달빛도 없는 밤길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는가?"
굴러 떨어지고, 빠지고, 가시에 찔리고, 바위에 부딪치면서 걸었다. 지게만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을 어림잡아 나아갔다. 지금도 그 순간들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약 1시간을 걸은 후에 엉망진창의 몰골로 계월에 도착한 나는 "업치기 마을에 미용사가 있으니 몇 사람이 나가서 모시고 오세요"라고 말한 후에 울음을 터트렸다. 아마 '이제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서러움이 복받쳤던 것이다.
나의 말을 듣고 계월에 사는 청년들 서너명이 햇불을 만들어 업치기에 가서 그 미용사를 안전하게 모시고 왔다.
엄마는 지금도 컴컴한 밤에 나타나 울음을 터트리는 그 날 사건을 가끔 이야기 하신다.
"정호야 니가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서럽게 울더라."
빛이 없는 길을 가면 참으로 두렵다. 깜깜한 길을 안내하는 빛이 있다면 두렵지 않다. 빛은 죽을 고비에서 지켜주는 생명의 능력이다.
내가 11살 소년으로 겪은 빛의 소중함은 나의 삶에 좋은 경험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빛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경험만큼 강렬한 것은 없다. 그 때 달빛이나 랜턴이 있었더라면 미용사를 잘 안내했을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불안한가?
현재 하는 일이 선명하지 않는가?
돌아보아야 한다. 혹시 빛없는 어두운 길을 가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빛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빛은 어두움을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