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제 어느 때 무슨 일로 하고 있던 일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뇌경색이 왔다.
전날 저녁밥 먹을 때 숟가락질, 젓가락질을 아무렇지도 않게 잘했는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보니 팔에 힘이 쑥 빠져있는 것이었다. 구급차 119를 타고 병원에 갔더니 뇌경색이 왔다고 한다.
그날부터 나는 오른팔을 못 쓰는 사람이 되었다. 어제까지 말짱하던 사람이 오늘은 장애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기가 막혔다.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단 말인가. 종이 한 장 집을 수가 없었다. 집기는커녕 눈앞에 놓여있는 종이를 보고도 머리에서는 손을 벋어 잡으라고 하는데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손바닥이 바위처럼 바닥에 딱 달라붙어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우리 속담에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쉬운 일을 말할 때 ‘땅 짚고 헤엄치기’가 있다. 그보다 더 쉬운 일로 ‘손바닥 뒤집기’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인 손바닥 뒤집기가 안 되는 것이었다.
어제와 오늘. 단 하루 사이에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글씨를 쓸 수가 없고 밥을 떠먹을 수가 없고 주차장에 세워놓은 자동차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내가 해오던 일을 언제 어느 때 무슨 일로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일은커녕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하던 일을 못하게 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하지 않던 일을 해야 할 경우도 생긴다. 재활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가며 손가락을 오므리고 펴가며 열을 세는 일을 해야 했다. 그것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아버지 팔베개를 베고 하던 일이었다. 그것을 다시 해야 했다. 힘을 들여서 손가락으로 열을 세는 일을 하면서 도대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손가락으로 콩이나 쌀 주워 담기는 몇 살짜리가 하는 일이며 고리 집어 막대에 끼우는 일은 또 몇 살짜리가 하는 일인지 기가 막혔다. 그 후로 계속되는 나의 재활운동은 이 병이 나지 않았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었다. 이렇게 힘들게 계속되는 훈련이 나를 더 발전시키기 위한 일이 아니라 전에 하던 일을 되찾기 위한 일이었다. 아무리 기를 쓰고 노력해도 예전 기능의 80% 정도밖에 되찾을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이었다. 그 80%의 회복을 위하여 나는 지금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용트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운동도 꾸준히 해왔고 술 담배도 멀리하면서 건강관리도 잘 해오지 않았는가. 평소에 혈압이 높은 것도 아니었고 배가 나온 것도 아니고 성질부리며 살지도 않았는데…….
운동은 나 몰라라 하고 날이면 날마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던 사람도 멀쩡하고, 살이 피둥피둥 쪄서 혈관이 다 눌려 있을 것 같은 저 뚱뚱보도 뇌경색에 걸리지 않고 저렇게 손발을 잘도 움직이며 걸어가는데 왜 나에게 그런 병이 왔을까 생각할수록 서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이것도 하나의 운명인가. 처음부터 내 생애에 예정되어 있었던 일인가, 도중에 생긴 일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보다 훨씬 험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쩌면 생명과 관련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만한 일도 다행인지 모른다. 나보다 훨씬 심하게 당한 사람들도 있다. 나와 자주 만나던 친구는 길을 걸어가다가 그대로 앞으로 넘어져 얼굴이 시퍼렇게 멍이 들면서 뇌경색과 뇌출혈이 동시에 와서 손발을 못 쓰게 되어 일어서지도 못한 상태에서 재활 중이다. 그도 생각할수록 기가 막혀 울음밖에 안 나온다고 한다. 고향 사람 중에는 아침에 일어나다가 넘어져 목을 다치는 바람에 목 이하의 몸이 마비되어 누워만 있는 사람도 있다.
어찌 그뿐인가. 아침에 다녀오마고 손 흔들고 집을 나섰던 사람이 불과 한 시간도 안 되어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감사해야 한다.
그래 받아들이자. 나만 당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죄가 많았을 것이다. 그 죄값인지도 모른다. 회개하자. 이러다가 내가 지은 죄를 회개하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면 하늘나라에도 못 갈 수도 있다. 행여 빚진 것은 없는지 살펴보고 남 아프게 한 일은 없는지 돌아보자. 어쩌면 이번 일이 앞으로 작은 죄라도 짓지 말고 정직하게 살면서 건강 잘 챙기라고 경고를 준 것인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리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언제까지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해오던 밥 먹는 일마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숨을 쉴 수조차 없게 될지도 모른다.
감사하자. 전에 할 수 없었던 손바닥도 뒤집을 수 있고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을 수 있으며 글씨도 쓸 수 있고 컴퓨터 자판도 두드릴 수 있게 되었음을 감사하자. 지금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팔을 휘저으며 내 발로 거리를 걸어갈 수 있음을 감사하자. 전에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지극히 작은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게 되었음을 감사하자. 숨만 제대로 쉴 수 있는 것에도 감사하자. 사람은 어느 때 무슨 일로 하고 있던 일을 못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