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2월 3일, 입춘이다. 올해는 예년보다 하루 일찍 입춘이 찾아왔다.
그러나 날짜는 하루 앞이지만 입춘 시간은 늦은 밤중인 22시 49분이다. 다른 해의 2월 4일이나 시간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
입춘은 일 년 24절기의 첫 번째 절기다. 이제부터 일 년이 시작되는 것이다.
입춘은 설 입(立) 자에 봄 춘(春) 자다.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봄을 세우라는 것이다. 새봄을 맞아 올해는 무엇을 할 것인가 계획을 세우라는 것이다.

입춘날에는 봄이 어서 들어오라고 대문에 입춘첩을 붙인다
옛사람들도 다른 계절보다 봄을 맞이하는 입동의 의식을 중요시했다.
먼저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문구를 써서 대문에 붙였다. 이것을 대문에 붙이려면 대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더러워진 대문에는 붙일 수 없을 것이니 대문을 깨끗이 닦았을 것이다. 부서진 대문에는 못 붙였을 것이니 대문을 잘 살펴보고 부서진 대문을 고쳤을 것이다. 집안을 살펴보고 봄을 맞을 준비를 했던 것이다.
입춘대길(立春大吉) 글씨는 서당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동이 쓴 것을 붙였다. 자기의 글씨를 동네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것이니 얼마나 정성을 들여 썼을 것인가.
입춘대길과 함께 건양다경(建陽多慶)도 함께 붙였다.
좋은 일들이 집안에 가득 차라는 소망을 기원하는 것이다.

입춘날에는 어린 학동이 쓴 글을 붙여주었다
입춘첩을 붙일 때에는 입춘대길과 건양다경을 들 입(入)자 모양으로 양쪽에 붙인다.
입춘이 되었다고 바로 봄이 오는 것이 아니다.
그때부터 봄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월달은 맹춘(孟春)이라 했다. 맹(孟)은 맏이, 처음을 뜻한다. 이월을 중춘(仲春)이라 했다. 중(仲)은 버금 중, 가운데 중이다. 삼월은 계춘(季春)이라 했다. 계(季)는 막내, 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음력으로 이월이나 삼월이 되어야 제대로 봄이 되는 것이니 양력으로는 4월은 되어야 제대로 봄이 오는 것이다. 다만 미리미리 봄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입춘을 만들어 둔 것이다.
입춘에는 태양의 황경이 315°이며, 봄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날이다. 가정에서는 콩을 문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대문기둥, 대들보 등에 좋은 글귀를 써 붙였다. 마을에서는 공동으로 입춘굿을 크게 하고 농사의 기초인 보리뿌리를 뽑아 풍년과 흉년을 점쳤다.
입춘첩 붙이고 떼는 날
입춘첩은 보통 입춘 날 입춘 시에 붙이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니까 2월 3일 22시 49분에 붙이는 것이 제일 좋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 따지지 않고 아침에 붙이기도 한다. 그리고 떼는 날은 우수인 2월 18일 전날인 2월 17일에 떼는 것이 좋다.
'입춘'이라는 말은 봄(春)이 들어서는 날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중국의 전통 의학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이나 당나라의 역사서인 『구당서(舊唐書)』,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 등 여러 문헌에서 입춘 기간을 5일 단위로 셋으로 구분하고, 초후(初候)에는 동쪽 바람이 불어 얼었던 땅을 녹이고, 중후(中候)에는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물고기가 얼음 밑에서 활동을 시작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입춘 기간에 대한 이런 묘사가 조선 초 이순지(李純之) 등이 펴낸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 등 한국의 여러 문헌에도 인용되고 있는데, 중국 문헌의 절기는 주(周)나라 때 화북(華北)지방-지금의 화베이 지방으로 베이징과 텐진이 있는 지역의 기후를 기준으로 기술된 것이어서 한국의 기후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입춘이 되면 풀더미 속에서 쑥을 비롯한 새싹들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입춘 풍속
입춘날의 아침에는 대문이나 기둥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등의 입춘첩(立春帖)을 붙였다. "입춘대길"은 "입춘을 맞아 큰 복이 있을 것이다"라는 뜻이고, "건양다경"은 "양의 기운이 일어나서 경사스러운 일이 많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입춘첩은 궁중에서 설날에 문신들이 지어 올린 새해를 축하하는 시문 가운데 뛰어난 것을 뽑아 대궐의 기둥에 붙였던 데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입춘첩의 내용은 집안마다 다른 내용이 전해지기도 했는데 해마다 새로 지어 써 붙이기도 했다.
입춘날에는 '아홉차리'라는 풍속도 있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아홉 번씩 한다는 뜻으로, 부인들은 빨래를 아홉 번 하고, 학생들은 글을 아홉 번 읽었다. 즉, 자신이 감당하는 일을 아홉 번씩 부지런하게 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깨우치는 풍속이었다.
입춘에는 또한 오신채(五辛菜)를 먹는 풍속이 있었는데, 오신채는 파, 마늘, 달래, 부추, 무릇 등 다섯 가지의 매운 나물을 말하며, 한해의 첫 절기에 맵고 쓴 오신채를 먹음으로써 삶의 쓴맛을 미리 깨우치고 참을성을 키운다는 교훈이 들어 있는 풍속이다.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丁學游)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중 정월령에 입춘, 우수 절기에 대한 당시 농촌 풍습이 전한다.
입춘은 일 년 중 새로운 각오를 다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1월 1일 새해와 음력설에 다짐했던 각오가 느슨해진 사람은 입춘날에 마음을 다잡아 반드시 뜻을 이루기를 기대하는 중대한 날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