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면서부터 독립하려는 의지가 있다.
그런데 인간만은 부모가 그 독립 의지를 막는 일을 한다.
태어난 지 1년이 되면 첫돌이다. 돌이 지나면 아이가 서서 걷게 된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때부터 아이는 혼자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것을 출발점으로 아이는 독립을 도모한다.
아이가 걷기 시작할 때에 부모가 손을 잡아주면 처음에는 부모의 손을 잡고 걷다가 조금 지나면 손을 털어 혼자 걸으려 한다. 이것이 본능적인 독립의지다.
그런데 부모가 자꾸 간섭을 한다.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는 것이 안쓰러워 계속 손을 잡아주려 한다.
아이가 밥을 먹기 시작하면 수저를 들고 떠먹으려 한다. 물론 밥이 입으로 가지 않고 대부분 흘려버린다. 그것이 안타까워 밥을 떠먹여 준다.
옷도 혼자서 입어보려 한다. 제대로 되지 않는다. 부모가 달려들어 옷을 입혀버린다. 신발도 혼자서 신으려 하면 왼발과 오른발이 바뀐다. 그것을 부모가 바르게 신긴다고 대신 신겨준다. 조금 자라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 아이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뒤처리를 부모가 해준다.
심지어는 아이의 방청소도 대신해주어서 대학생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방청소를 해보지 않았다는 아이도 있다.

아이의 독립을 부모가 막는다. 아이가 해야 할 일은 아이가 해야 기능이 발달하고 두뇌가 발달한다. 발달의 시기를 넘겨버리면 속도가 늦어진다.
자녀는 계속하여 독립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그 시기를 보모가 막고 대신해 주어 아이에게 치명적인 방해를 한 것이다. 독립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다.
그래 놓고 아이가 자라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푸념을 한다. 그러다 보니 공부도 혼자서는 할 줄 모르는 아이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학원에라도 가야 한다고 학원엘 보낸다. 집에서 혼자서 공부할 줄 모르는 아이가 학원에서는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자녀가 독립하기 시작하는 첫돌부터 독립을 방해해온 부모는 아이의 성장과 독립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일을 통하여 발달되어야 할 두뇌도 함께 방해를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려서 독립 의지를 방해했던 부모는 그 후로 아이의 노예가 된다. 그래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아이가 점점 자람에 따라 한가해져야 할 부모가 더 바빠진다. 아이의 할 일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아이가 하나 더 생기면 더 바빠진다.
아침에 깨워주어야 하지, 옷과 양말 챙겨 주어야 하지, 학교 태워다주어야 하고 학원에 데려다 주어야 한다. 그런 아이는 집에 와서도 부모가 숙제했느냐고 묻기 전에는 숙제도 하지 않는다. 공부하라고 할 때까지 공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부모가 하라고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어도 부모가 뒤를 보아주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시집 장가간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해주느라 바쁜 부모도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반성해야 한다. 첫돌부터 독립의 의지를 꺾은 벌이다.
나는 내 아이의 독립을 얼마나 방해했는지 한 번쯤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