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옛길 보광재를 오르며

임실, 구이 사람들 전주장 보러 오던 옛 고갯길

작성일 : 2025-02-21 05:40 수정일 : 2025-02-24 08:17 작성자 : 이용만 기자

 

 

 

형님, 전주 주변에 천 년 옛길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있는데 어디일까요?”

그야 몇 개 있겠지. 다가산 옆의 강당재 아닐까?”

포장 안 된 옛길 그대로의 길인데 길고 높은 고개인데요.”

그런 고갯길이 아직도 남아 있단 말이야? 모르겠는데.”

보광재 들어보셨나요?”

! 그렇다. 그 보광재

 

그제야 보광재가 생각나는 것이다.

보광재는 지금도 구불구불 산길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귀한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은 나의 단골 제보자요 놓고 보기에도 아까운 동생이라는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

 

보광재는 완주군 구이면 평촌에서 전주 서학동 흑석길로 넘어오는 고갯길이다.

구이 사람들뿐만 아니라 임실 운암과 신덕 사람들도 경각산을 넘어와 다시 보광재를 넘어서 전주로 장보러 나왔고 전주 사람들은 보광사를 가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다.

그 길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수천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넘나들었던 보광재 산길

 

내친김에 집을 나서 보광재 고갯길을 찾아 나섰다.

낮 최고 기온이 영상 2도에 그친다는 2월 중순의 아직도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한 겨울이다.

전주 싸전다리를 지나 흑석골로 접어들어 한참을 가야 보광재 옛길안내판이 나온다. ‘전주 미래 유산 39.

 

보광재 고갯길은 길기도 하다. 서학동 흑석골에서 쉬지 않고 한 시간은 걸어가야 고갯길 산마루에 이른다.

 

일단은 학산 선각사를 잠시 바라보고 가야 한다.

보광재라는 말이 근처의 보광사에서 유래되었다 하니 일단은 불심을 안고 고갯길을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냥 들떠서 가는 등산길이 아니라 숙연한 마음으로 올라야 하는 고갯길이 보광재다.

 

길은 구불구불한 산길로 이어진다.

지루하지 말라고 곳곳에 오작교 같은 둥근 나무다리가 놓여 있다. 견우교도 있고 직녀교도 있다. 흑석교도 있고 서학교도 있고 보광교도 있다.

다리뿐만 아니라 잠시 쉬어가라고 정자도 있다. 사각정자도 있고 팔각정자도 있다. 정자 지붕 위에는 이끼가 파랗게 덮여 있다.

 

곳곳에 있는 나무 다리가 운치를 더해준다

 

보광교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고갯마루를 향하여 오르는 길이다. 경사가 급해진다. 숨이 가쁘다. 목이 탄다.

그런데 자그마한 옹달샘이 있다. 이 산꼭대기에 옹달샘이라니? 이는 하늘의 은총이다. 마른 목을 축이고 천천히 올라가라는 배려인 것이다.

 

 보광재 오르는 길 산마루 부근의 시원한 옹달샘 

 

드디어 도착한 고갯마루.

아름드리 정자나무를 양쪽에 끼고 서 있는 날렵한 정자 하나.

고갯마루까지 오느라 힘들었으니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정자에 앉아서 쉬어서 가라는 배려다. 이곳까지 정자를 지을 자재를 운반했던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보광재 고갯마루에 서 있는 정자

 

가파른 골짝길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그보다 더 시원한 것은 탁 트인 전주쪽 풍경이다. 전주 시가지가 다 보인다. 멀리 익산의 금마까지 보인다. 둥글게 서 있는 산은 미륵산이 분명하다.

 

고갯마루에는 전주미래유산 39호 보광재 옛길안내판이 하나 더 서 있고, 동으로 가면 고덕산이요, 서쪽으로 가면 학산이고 남쪽으로 가면 평촌이요, 북쪽으로 가면 흑석골이라는 동서남북 길 안내목도 서 있다.

 

가장 중요한 보광재에 대한 안내판을 들여다본다.

보광재는 과거 임실과 구이면 평촌리에서 전주로 넘나들던 주요 교통로로써 보광사라는 절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전주로 통하는 옛길 중 하나로 한때는 이곳을 귀한 손님이 오는 길이라 이름 붙여진 화객도(華客道)라 하였으며 이곳 보광재 길이 주요 관문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보광재는 해발 높이가 280m로 기린봉(271m)과 남고산(273m) 보다 더 높은 곳이기도 하다. 주변에 흩어져 있는 돌들을 보면 과거 이곳에 성황당이 없었을 리가 없다.

보광사(普光寺)는 백제 때에 창건된 절이며 통일신라 때를 거쳐 고려 충숙왕 때인 1343년에 중향 스님이 중창한 절로써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 상보와 하보 마을 중간지점에 절터가 남아 있다.”

 

 고갯마루에 서 있는 보광재 안내판

 

그렇다면 이 고갯길은 전주 사람들이 영험한 보광사를 찾아서 넘나들던 고갯길이라 보광재라 불렀던 것이 확실하다.

 

안내판을 보면 옹기를 가득 짊어진 옹기 장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전주 쪽에서 올라오는 길은 그런대로 올라온다 해도 평촌으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 깔끄막길인데 옹기를 지고 어떻게 이 고개를 넘어왔는지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아차 실수로 넘어지면 옹기가 박살이 날터인데 참으로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광재 산마루에서 바라본 전주 시가지

 

고갯마루에 또 하나의 팻말이 서 있다.

고갯마루에서 평촌으로 내려가는 길은 새만금 전주고속도로 공사로 인하여 임시 폐쇄한다는 것이다.

흑석골에서 출발하여 평촌으로 내려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고갯마루까지만 답사하고 나머지 고갯길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백제시대 사람들이 보광사를 가기 위해 높은 고갯길을 넘었고 전주장을 보기 위해 고갯길을 넘었던 보광재는 2천 년은 족히 되었을 고갯길이다. 그런데 어찌 그 이전 사람들이라고 이 고갯길을 넘지 않았으랴. 그보다 먼저 마한시대 사람들도 이 고갯길을 넘지 않았을까?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길 가운데 산사(山寺) 가는 길이 있다.

보광재야말로 산사 가는 길인 것이다.

수천 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넘나들었던 보광재 길을 오늘 내가 걸어가면서 바라본 구름 한 덩이는 어쩌면 머나먼 백제 사람들이 이 길에서 바라보았던 그 구름이려니 싶어 왈칵 반가운 마음이 솟는다.

 

 

 

 
이용만 기자 ym60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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