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무를 두고 위에는 독수리가 살고 있고 아래에는 고슴도치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고슴도치가 독수리에게 말하였다.
“독수리야, 우리 아기들이 이제 밖으로 나올 때가 되었는데 혹시 우리 아기들이 나오면 잡아먹지 마. 부탁한다.”
“네 아이들이 어떻게 생겼는데?”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게 생겼단다.”
그날 고슴도치가 외출을 하고 돌아와 보니 새끼들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조금 떨어진 곳에 고슴도치 새끼들의 껍질만 보였다. 고슴도치는 화가 나서 독수리에게 항의를 했다.
“내가 우리 새끼들은 잡아먹지 말라고 부탁을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야?”
독수리가 대답했다.
“이 어리석은 자야. 제대로 가르쳐 주어야지. 그게 세상에서 제일 예쁜 것이냐?”

나는 내 자녀들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 제대로 알고 있는가?
자녀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아이가 뱃속에서 배냇짓을 하는 것까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자. 내 아이를 고슴도치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슴도치는 새끼들에게 독수리가 어떻게 생겼으며 잡아먹을지도 모르니 조심하라고 가르쳐 주고, 잡아먹으려고 할 때에 엄마가 잡아먹지 말라고 부탁했던 고슴도치 새끼라고 말 하도록 가르쳐 주었어야 했다.
가르쳐 주어야 할 것들을 가르쳐 주지 않고 무작정 예쁘다고만 생각했던 고슴도치처럼 내 아이를 키우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 돌아보자.
요즘 할머니들이 모이면 스마트폰에 담긴 손자들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다. 어느 한 사람이 사진을 꺼내어 자기 손자 예쁜 짓하는 것 좀 보라고 자랑을 하면 너나없이 핸드폰을 꺼내 자기 손자 자랑을 한다. 하나같이 자기 손자가 제일 예쁘고 예쁜 짓만 한다고 우긴다. 남의 손자 것은 보려고도, 들으려고도 않는다.
나도 내 아이만 보이고 다른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다른 아이도 보여야 내 아이를 제대로 볼 수 있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를 해보아야 내 아이의 수준과 정도를 알 수 있다.
처음으로 학교에서 급식이 시작되었을 때 어떤 학부모가 학교에 가서 학생들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자기 아이가 식판에 음식을 받아가지고 자리로 가서 식사하는 것을 본 학부모가 충격을 받았다. 밥그릇도 아닌 식판에다 양에 차지도 않을 만한 눈곱만큼 받아가지고 맛도 없게 먹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이다. 모두가 똑같이 받아서 식사하는데 자기 아이만 보인 것이다.
그 학부모는 결국 급식을 거절하고 매일 점심밥을 학교로 날라다 주었다. 아이는 고립되고 결국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 했다.
내 아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어디까지인가 생각해 보자. 수백 명의 아이가 똑같이 식판을 들고 급식소에서 음식을 받아다가 정해진 자리에 앉아 식사를 했는데 자기 아이만 급식다운 급식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이 나의 마음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
내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귀하다는 생각이 자녀의 장래를 막는다. 세상은 내 아이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간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면 고립되고 외톨이가 된다. 어려서부터 다른 아이들과 같은 조건에서 같은 대우를 받고 살아가는 아이가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상호 의존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뻐꾸기 새끼를 제 새끼로 알고 진짜 제 새끼들을 둥지에서 밀어내는 것을 보고만 있는 할미새나 멧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일정 기간 자녀를 잘 보살펴주되 때가 되면 부모가 보살펴 주지 못할 때에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고슴도치가 독수리에게 잘못 알려주듯이 내 아이에 대하여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나친 애정의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고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잘 적응하도록 지도해 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