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전주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다리 위의 이야기
전주천에는 많은 다리가 있다.
다리 위의 길은, 길은 길인데 의미가 다른 길이다.
그 다리들이 각기 갖고 있는 독특한 특징이 있고 품고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다리에 얽힌 이야기만 모아도 전주의 역사를 알 수 있을 만큼 다양하다.
전주의 옛 다리들
1. 남천교
전주천에 최초로 놓인 다리는 남천교였다.
전주에서 임실과 남원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했던 이 다리는 조선시대부터 있었다. 영조 29년인 1753년에 홍수로 다리가 유실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다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조 15년인 1791년 12월에 이 다리를 석교(石橋)로 다시 놓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1957년에 철근 콘크리트로 다리를 놓았고 2009년 10월에 기존의 다리를 철거하고 지금의 모습으로 복구하였다. 남천교 다리 위에는 청연루라는 누각이 있다.
청연루는 전주팔경의 하나인 한벽루의 한벽청연(寒碧晴煙)에서 따온 말로 전주천의 다리를 대표하는 명물로 등장하였다.
청연루에 앉아 한벽루와 멀리 승암산을 바라보는 운치는 남천교에서만 누릴 수 있는 멋진 풍경이다.

전주의 최초의 다리인 남천교와 다리 위의 청연루
2. 서천교
전주에서 두 번째로 놓인 다리는 서천교다.
남천교가 임실, 남원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을 위해 놓인 다리라면 서천교는 김제 정읍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을 위해 놓인 다리라고 볼 수 있다. 지금 보면 전주의 서쪽이 아닌 남쪽이지만 전주 토박이들이 살았던 향교 부근 자만동 쪽에서 보면 서쪽인 것이다.
이 다리는 여러 사람의 천주교인들과 동학농민혁명군들이 다리 아래에서 처형을 당한 아픈 이야기를 안고 있는 다리다.
3. 매곡교
매곡교는 완산칠봉의 산자락에 매화나무가 많은 골짜기 부근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주 남부 시장의 중심을 이루는 다리가 매곡교다.
1931년 전주 부호 박기순이 세운 나무다리로부터 시작된다. 매곡교는 장다리, 연죽교, 쇠전다리, 설대전다리라고도 불렸다.
매곡교를 중심으로 담배가게, 종이방, 옷가게 기름집, 국숫집, 주점 등이 늘어서 있었다. 전주 장날이면 많은 사람이 왕래를 했는데 비좁은 다리를 몸을 비비며 건너다녔다.
이 다리는 삼일운동 때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지점이다. 신흥학교와 기전학교 학생들이 몰래 태극기를 인쇄하여 리어커에 싣고 무와 배추로 덮고 매곡교까지 실어 날랐던 다리다.
또한 이곳은 서문교회 신도였던 이보한이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찬송가를 부르며 전도를 하였던 곳으로 이보한을 ‘이거두리 선생’이라 불렀고 걸인들을 돌보았던 곳이다. 이거두리 선생이 세상을 뜨자 걸인들이 주축이 되어 장례가 치러졌는데 장례 행렬이 10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 고복수의 짝사랑 노래를 탄생시킨 다리이기도 하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매곡교
4. 싸전다리
전주 남문시장에서 서학동으로 건너가는 이 다리는 이 부근에 쌀가게(싸전)들이 몰려 있던 곳이라 하여 ‘싸전다리’라 불렀다.
이 다리는 1922년, 일제강점기 때에 전주 최초로 콘크리트 다리로 만들어진 다리다. 1936년 8월에 있었던 대홍수 때에 전주천의 다리가 다 떠내려갔는데 이 다리만은 끄떡없이 버티고 있었던 튼튼한 다리다.
1965년에 4차선 넓은 다리로 놓아 다리 밑이 노인들의 쉼터로 쓰였다.
싸전다리를 중심으로 천변에 장터가 조성되었는데 소를 사고 파는 우시장과 땔감을 사고 파는 나무시장도 이루어졌다. 지금도 이곳 천변에서는 새벽시장이 열린다.

싸전다리는 전주 최초의 콘크리트다리로 가장 튼튼한 다리다
5. 다가교
다가교에는 지금도 작은 석등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때에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위해 등불을 밝혔던 흔적이다.
다가교는 시내 쪽에서 다가산을 가기 위해 건너다녔던 다리인데 다가산에는 일본 천황에게 참배하는 신사참배단이 있던 곳이었다.
6. 완산교
일제강점기 때에 전주의 중심지인 완산의 기운을 끊기 위해 김제나 정읍 쪽으로 나가는 길을 용머리 산줄기를 끊어 만들 때 놓여진 다리다.
완산교 부근의 완산동은 오래전부터 전주 토박이들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한겨울에 전주천의 두꺼운 얼음을 다가산 아래 깊이 묻어두었다가 여름에 꺼내어 전라감사 밥상에 올렸던 곳으로 지금도 빙고리라 부른다.

일제강점기 때, 다가산에서 바라본 완산교. 멀리 보이는 다리는 매곡교다.
7. 쌍다리
전주 시내와 어은골을 잇는 이 다리는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있어 ‘쌍다리’라 부른다. 또한 난간이 없는 다리여서 ‘멍청이 다리’라고도 부른다.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다리 위로 넘쳐서 바짓가랑이를 걷고 건너던 다리였는데 지금도 그대로 멍청이 다리이며 홍수 때는 물이 다리를 덮어 다닐 수가 없다.

쌍다리는 비가 많이 오면 건널 수가 없는 다리다
8. 추천교
전주에서 북쪽으로 난 추천교는 ‘용산다리’라고도 불렸다.
전주천과 삼천천이 합류하여 추천을 이루는 지점에 세워진 이 다리는 추천대와 팔과정을 비롯한 팔복동의 이야기를 안고 있는 다리이기도 하다.
추천교는 1724년에 발간된 해동지도와 1737년에 발간된 광여도에도 추천교가 나오며 대동여지도에도 추천이 나온다.
부근에는 조선 성종 때 대사헌과 병조참판을 지낸 문신 추탄 이경동이 세운 추천대(楸川臺)라는 정자가 있다.
예로부터 넓은 강 위에 놓인 다리여서 홍수가 나면 수없이 떠내려갔던 다리다.
지금부터 400여 년전 하가마을에 살던 효자 추탄(楸灘)의 효행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버지의 약을 구해오던 중 홍수가 나서 다리가 떠내려가 버렸는데 급한 마음에 물로 뛰어들었더니 물살이 갈라지면서 길이 나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는 것이다.
추천이라는 말은 효자 추탄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광여도에 나타나는 추천교
지금은 전주천에 많은 다리가 놓여 있다.
그러나 옛날부터 있었던 다리처럼 이야기를 품고 있지는 않아 정겹지는 않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야 정겹고 애달프다.
다리는 길은 길이로되 같은 길이 아니요, 좁은 길을 오가며 만들어 낸 이야기들이 남아 있는 또 다른 길 중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