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말하였다.
"선(善)을 행하는 데에도 용기(勇氣)가 필요하다."
작은 선이라 해도 금방 실천이 되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지 처음에 할 때의 어색함이 존재한다. 성격에 따라서 쑥스럽기도 하고 겸연쩍기도 하다. 이것도 길들여져야 한다. 길거리의 휴지를 줍는 일도 용기가 필요하고 남울 돕는 일도 용기가 필요하다.
어느 퇴직 교장 선생님의 말이 생각난다.
그 교장 선생님은 매일 아침에 일찍 출근하여 학교 안을 돌아다니면서 휴지를 주웠다고 한다. 교직원들이나 학생들이 등교할 때에 기분 좋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퇴직을 1년 남겨놓고 교직원들이 이제 퇴직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휴지 줍는 일을 그만하시고 편히 쉬시라고 권하는 바람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퇴직을 한 후에 그때에 휴지 줍는 일을 그만둔 일을 두고두고 후회를 하였다고 한다. 마지막 퇴직하는 날까지 하던 일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도 필요하고 의지도 필요하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선을 행하는데도 필요하다. 한 번의 용기가 그다음부터는 쉽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서먹함이 한 번의 인사말로 풀어지며 탈 때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사람도 먼저 인사말을 던지면 다음부터는 저쪽에서 먼저 인사를 하기도 한다.
어떤 설문조사에서 “나의 성격은 어떠한가?”에 대한 답변으로 놀랍게도 90% 이상이 내성적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분명히 외향적인 사람인데도 본인은 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외향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설문에는 거의 다 “그렇다”라고 답하더라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명랑하고 쾌활한 사람도 자신은 내성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로 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명랑하고 쾌활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이 설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 사람은 20% 미만이었다.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오면 응답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는 거의가 “그렇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생각보다는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먼저 말을 할 용기는 없지만 말을 걸어오면 기꺼이 응답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용기를 내어 먼저 말을 걸어보는 것이 어떨까? 말을 걸어오면 응답하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펌프를 통하여 땅속에 있는 물을 길어 올리려면 마중물이 필요하다. 마중물 한 바가지가 없으면 우물 속에 있는 열 섬 물을 길어 올릴 수 없다.
대인관계도 누군가가 마중물 역할을 해주면 물이 콸콸 나오듯이 대화의 문도 열릴 것이다. 그 마중물의 역할을 내가 하면 어떨까?
마중물이 되어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는 일도 좋은 일이고 복 받을 일이다.

사람들과의 대화의 문을 여는 데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열고 대화의 문을 여는 방법에 대하여 인간관계에 대한 수많은 사례와 그것들을 풀어가는 원칙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하여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제 용기를 내어 선(善)을 행하여보자.
어색하거나 쑥스러워도 한 번 실행해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할 수 있다.
인간관계도 내가 먼저 말을 걸고 내가 먼저 다가가면 반가워할 사람들이 많다. 내가 먼저 마중물이 되어 시원한 물줄기가 콸콸 쏟아져 나온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보람이 될 것이다.
선(善)을 행하는 데에도 용기(勇氣)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