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어 오르는 피로 시를 쓴 이광웅 시인의 생애

독재의 사슬에 묶인 불운의 시인

작성일 : 2021-08-13 05:14 수정일 : 2021-08-13 09:22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전북 출신의 시인 가운데 가장 가슴을 아프게 하는 시인을 한 사람 꼽으라면 이광웅 시인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피로써 시를 쓴 사람이다.

 

그의 시에서는 피가 튄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온통 핏빛이다. 그는 시대적 아픔을 몸소 겪어온 시인이다. 그래서 그가 써놓은 시는 다른 시를 읽듯이 그렇게 한가한 마음으로 읽을 수가 없다. 일본강점기 시대의 애국지사들이 쓴 편지를 읽듯이 읽어야 한다.

서문을 쓴 문익환 목사 이 시집을 한 번에 읽지 않고 책을 덮었다가 다시 읽으면서 ‘조심조심 이 책을 펼쳐 정말 조심조심 읽어 내려갔습니다.’ 라고 썼다.

 

그는 아주 평범한 학교의 교사였다.

용공주의자나 김일성주의자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굴레를 씌운 오송회라는 단체에 가입하지도 않았고 그런 단체가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는 오송회라는 불순분자 단체의 단원으로 활동한 죄목으로 잡혀 들어갔다. 그리고 지독한 고문을 받았다. 계속되는 고문에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끝에 그들이 써놓은 글에 서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오송회로 묶인 사람들은 재판을 받게 되고 상당기간 감옥생활을 했다.

 

그 과정에서 생성된 시가 평범할 수는 없다. 남다른 고통 속에서 나온 시이기에 가슴을 찌르고 심금을 울린다. 고문을 가하는 자들이야 늘 하는 일이 그것이니 별스런 일이 아닐 수도 있으나 당하는 사람은 일생일대에 한 번 겪는 일이요, 엄청난 고통을 받는 일이기 때문에 그 영향이 평생을 간다.

 

그가 시집의 제목으로 내 건 ‘목숨을 걸고’도 평범한 제목은 아니다. 그가 정한 시의 제목 또한 범상치 않다. 그의 시집에 나온 제목 가운데는 ‘대공분실 뒤뜰에는, 그때 그 순간 악마가, 징역 생각난다, 똥물, 제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등이 있다. 제목뿐만 아니라 시의 내용에는 사방에서 피 튀는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서문을 쓴 문익환 목사는 제목을 ‘너무 거룩하여라’라고 붙였고 한 구절 한 구절이 이광웅 시인을 대변하는 글들로 차 있다. 그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생명은 거룩하여라. 그래서 우리는 모든 생명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머리를 숙일밖에”

살아있는 것들의 가장 기본적인 생명에 대한 서두로 시작한 서문은 이광웅 시인의 싯귀 한 구절을 내놓는다.

 

‘철창을 통해서 흘러든 햇빛

얼어 곱은 두 손에 받아 든 햇빛’.

 

“이 구절에 멈추어 선 나의 마음은 고요히 책을 덮고 눈을 감을 수밖에 없더군요……”

 

그는 바로 읽지 않고 책을 덮고 기다린다. 얼마만큼의 시일이 지난 뒤 그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썼다.

“조심조심 이 책을 펼쳐 정말 조심조심 읽어 내려갔습니다.”

단번에 읽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을까? 그는 극도로 절제된 언어, 극도로 절제된 서정, 정말이지 조심조심 썼다고 했다. 이것은 그지없이 따뜻하고 자상스러운 사랑이라 했다.

 

 

웅얼거리고 아우성치는 천만 마디 말을 가슴에 깊이 간직한 채 그 가운데서 한 마디 한 마디 조심스럽게 골라내었다고 했다. 그리고 시인의 가슴에 웅얼거리고 있는 끝도 없는 말들을 생명을 쏟아 부어 종이 위에다 살려내는 일을 계속해주기를 믿는다고 하였다. 그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문익환 목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발문을 쓴 김용택 시인도 그가 감옥에서 나왔을 때의 모습을 ‘앳되어 보이던 그의 얼굴이 시커멓게 폭삭 늙어 있었다’고 하였다. 그가 용공분자로 잡혀 들어가서 얼마나 심한 고문을 받았으며 고통을 받았는지를 말하여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는 발간사 대신 후기 남겼는데 거기에 시집의 구성을 말하고 문익환 목사님이 서문을 쓰게 된 사유를 밝힌다. 그리고 이 시집을 내는 까닭을 ‘졸 시의 애독자인 누이들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1992년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었지만 그의 몸에는 이미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고 있었다. 그동안 용공문자로 얽혀 지독한 고문과 감옥살이로 인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그는 50을 갓 넘긴 나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용공분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지극히 평범했던 한 인간을 엉뚱한 굴레를 씌워 고난의 길로 처박아 넣어 힘겹게 세상을 살다가 제명에 죽지도 못하고 일찍 세상을 등지게 했던 그 나쁜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광웅 시인은 그들을 용서했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오늘도 말없이 흐르는 금강의 강변에 세워진 그의 시비 쓸쓸하게 그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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