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써 쓴 이광웅 시인의 시 세계
이광웅의 시는 그의 시집 제목에서 풍기듯이 "목숨을 걸고" 견뎌온 무섭고 아프고 쓰라림에 대한 시다. 그에 따른 분노가 함께 표출된 시다.
그의 시집 처음에 나오는 ‘양담배’를 보면 그냥 양담배가 아니라 고문실에서 형사가 강제로 피우라고 한 양담배다.
“우리가 수고한다고 해서
미국 사람들이 담배를 보내왔다.
너도 한 갑 피워봐라.”
“내 이런 악질은 처음 보겠군……
피우라면 피워, 이 자식아”
「고드름」 부분
형사는 무엇을 노리고 양담배를 피우게 하는 것인가. 애국자를 자처하는 수용자들에게 별볼일없는 고집을 피우지 말고 순순히 불으라는 협박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있으나 인간이 없는 특별한 세상인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난 일들이기에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난 세상일 수밖에 없다.
하루 스물네 시간 가운데
안도의 시간 있다면
그건 바로 좋은 환경, 변소에서의 시간.
「대공분실 뒤뜰에는」 부분
그런데 그 좋은 시간에 생각해 내는 것이 동맥 끊어 자살하는 것이라니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으면 그런 일을 하려할까 상상이 안 간다. 화장실에 가서 바닥의 물에 신문지를 적셔 유리창에 바르고 주먹으로 유리를 쳐서 깨뜨리고 그 유리조각으로 동맥을 끊어 자살을 하려는 것이다. 계속되는 고문에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싶은 것이다. 왜 그런 일을 하려 할까? 거기에 대해서는 ‘그때 그 순간 악마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지겨운 고문
고문을 중단 못할 바에야
어서 나를 총살시키시오
「그때 그 순간 악마가…」 부분
그가 고문을 받기 위해 간 곳은 참으로 특별한 곳이다. 그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 장모가 죽었다는 부고를 받는 날은 특별히 위로를 받는데 그게 설탕물 한 그릇이라 한다.
편지가 왔다
가장 추운 날이다
장모가 돌아가셨다
관구실 난로 옆
나를 불러
말없이 뜨겁게
설탕물을 타준다.
「편지와 설탕물」 부분
보통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날도 그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날인 것이다. 그래도 난로 옆으로 데려다 뜨거운 설탕물을 타 주는 일은 하나보다.
머리칼이 희어져 간
떠나 있던 6년 세월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유리창」 부분
그는 감옥에서 나와 교단으로 돌아온다. 학교에 돌아와 교실에 앉아 바라본 유리창에 비친 풍경 속으로 그는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을까? 그 유리창은 전에 바라보던 유리창과 같은 것이 아니었으리라.
시 「유리창」은 제목 아래 -나와 같이 옥고를 치렀던 동료 교사에게- 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 부제에 그가 쓰고 싶었던 시의 본뜻이 들어 있는 것 같다.
부제가 붙은 시들
이광웅의 시에는 위에서 언급한 시 외에도 몇 개의 부제가 붙어 있는 것들이 있다. 부제는 대부분 대상이 사람인데 감옥살이를 하면서 알게 된 사람이거나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스웨터
-황필구 선생님 영전에-
시름겨운 30년 감옥살이 청산하고
목을 매단 황 선생님……
스웨터여, 스웨터여
어디엔가 남아 있을 이 땅의
주인 잃은 수웨터여
분단의 눈물 절은
황 선생님 수웨터여
「스웨터」 부분
감옥살이 중 목을 매단 사람에 대한 시다. 칠순의 누이동생이 절어준 스웨터를 아까워서 입지도 않고 간직하고 있었는데 목을 매어 죽을 때에 어찌했나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시다. 주인을 잃고 스웨터만 덩그렇게 남아 있는 이야기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곳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어찌 한두 사람의 이야기이겠는가.
햇빛 한참
-유한욱 선생님의 운동시간-
감옥살이 30년을 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시다. 그도 역시 이데올로기에 옭힌 사상범인 것 같다.
작은 종이
-싸우는 교사 이복순 선생님께-
임용장을 받아 복직한 선생님에 대한 시다. 비록 작은 종이의 임용장이지만 큰 의미가 있는 승리임을 표현하고자 하는 시다.
빈 테이블
-싸우는 노동자 박경아 씨 생각나고-
복직되어 빈 테이블에 앉으니 커다란 처녀 노동자가 흘리던 커다란 눈물방울이 생각나는 것이다. 오래 가물어 메마른 논바닥 같은 금간 가슴을 적시는 눈물방울이 생각난 것이다.
푸른 청춘 붉은 학생
-전국교사협의회에 드리는 시-
그가 활동하였던 전국교사협의회 동지 교사들에게 주는 격려의 시다.
이광웅은 그의 시 곳곳에 그와 같이 감옥에서 고생했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시의 소재로 삼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평범한 사람들이 이야기가 아니고 특별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용공분자로 몰려 억지 감옥살이를 하고 나오지만 세상은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겨우 교직에 복직이 되어 학교에 나가지만 이내 전교조의 풍랑 속으로 휘몰린다. 당시의 정권과 전교조의 추구하는 바가 달랐던 것이다.
정의로웠던 그는 얌전하게 교직을 수행하고 있을 수가 없었기에 전교조 활동으로 다시 교직에서 쫓겨나 해직교사가 된다.
돌아가고 싶어
사랑하는 제자들 곁에
돌아가고 싶어
내가 바라는 자리 오직
그리운 교단뿐
「크리스마스카드만 해도」 부분
그는 교직에서 해직되고 나서 간절히 바라는 것이 학생들이 있는 교직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시는 감옥에 있을 때의 자유만큼이나 교단이 그리운 것이었다.
죽어가고 있다
제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죄스럽지 않겠는가
살아 있음이 죄스럽지 않겠는가.
숨 쉬고 있음이 죄스럽지 않겠는가
「제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부분
교단으로 가지 못하고 있는 사이 제자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고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이 죄스럽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가슴을 뜯고 싶은 것이다.
그가 바라는 민주주의는 어떤 것일까?
그는 어떤 민주주의 꽃을 피우고 싶어 했을까?
그가 쓴 「민주주의 꽃」이라는 시를 보면 민주의의 꽃으로 비유된 꽃이 바로 연꽃이다. 흙탕물 속에서도 깨끗하고 맑게 피어오르는 연꽃을 생각한 것이다.
머지않아
이 시궁창 같은 반절 남쪽 땅에서
고대하던
민주주의 연꽃은
정녕
피어오르리라
잠들었던 영령들도
일어나 나와
환희의 눈물 젖은……
산 사람과 하나 되어
춤을 추리라

그는 다시 봄날을 기다린다.
길고 긴 춥고 힘들었던 동토의 겨울이었지만 그가 기다리는 봄은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봄이 아니라 소박하고 단순한 봄이다. 어떤 봄이든 봄이 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더 간절하다.
그의 시집 마지막에 나오는 「목소리 향기」에서 그는 이렇게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먼 산에게론 듯 혼잣말
그윽이 흘리신다
그 깊고 잔잔한
목소리
향기……
동토에 머잖아
봄이 온다.
그에게 봄이 오기는 했다.
그러나 몇 번의 봄을 맞고는 다시는 봄을 맞이할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