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의 시 이론서를 낸 순창의 신경준(申景濬)

다재다능하고 박식했던 전북 문인

작성일 : 2021-08-14 10:52 수정일 : 2021-08-14 11:55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전북 출신의 문인 가운데 문학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특출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순창의 신경준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문학 활동은 물론 시 창작 이론서와 훈민정음 연구를 비롯하여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고증학적인 방법을 통한 지리학에 이르기까지 많은 업적을 남겼다.
 

신경준은 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문관이자 지리학자로서 신숙주(申叔舟)의 아우인 신말주(申末舟)의 후손이다. 신말주는 신숙주와는 달리 단종애사 때에 세조에 협조하지 않고 처가인 순창으로 내려와 자리를 잡음으로써 신경준이 순창을 중심으로 문학 활동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사람이다.

 

신경준은 태어난 지 아홉 달 만에 글자를 익혔고 네 살에 『천자문』을 읽었으며, 다섯 살에는 『시경』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어려서 한양으로 갔다가 강화도에 가서 공부를 하기도 하였다. 12살 때 다시 순창으로 돌아와 부친에게 글을 배우고 시를 지으면서 청년기를 보냈다.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26살 때에 가족들과 경기도 소사로 이사를 갔는데 그때 지어진 책이 『소사문답』이었다.

그는 산과 들과 하천에 대한 시를 많이 지었으며 지역의 역사와 지명 유래 등을 고찰한 글을 모아 책을 쓰기도 하였다.

그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여러 곳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으며 이러한 그의 경험이 훗날 지리학을 비롯한 많은 서적을 남길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늦은 43세에야 향시에 합격하고 그해 여름 증광시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다.

1757년 성균관 전적(典籍), 예조와 병조 낭관에 임명되었는데 그 후 서산군수, 정언(正言), 장령(掌令), 사간 등의 관직을 거쳐서 종부시정(宗簿寺正)으로서 강화의 선원각(璿源閣)을 중수한 뒤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재주를 알고 있었던 영조는 그를 불러들여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를 편찬할 때 『여지고(輿地考)』를 담당하게 하였으며, 그 해 6월부터 8월까지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를 감수하게 하였다.

 

 

신경준의 시 이론서인 시칙(詩則)
 

신경준은 최초로 시의 창작과 이해에 관한 이론서인 『시칙』을 지었는데 이는 23살 때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지은 책이라 한다.

이 책은 『여암유고』 권 8에 실려 있는데 그동안 고서에서 읽은 것과 스승으로부터 들은 것을 바탕으로 한시의 이해와 작법을 5개의 도표와 그에 관한 해설로 엮은 시 창작기법을 겸한 이론서다.

그는 『시칙』에서 시의 근본적 기본요소를 체(体), 의(意), 성(聲)의 세 골격으로 나누었는데 시의 형체는 8가지 격식의 작시법을 금기와 바람직한 방법으로 나누어서 설명했다. 그가 남긴 『여암유고』 권 1에는 시 62제하에 145수의 시가 남아 있는데, 그가 관직에 있을 때나 일상생활 속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시 세계를 구축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신경준의 대표작 『훈민정음운해』

 

훈민정음운해는 신경준이 젊은 시절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33세에 고향인 순창으로 돌아와 저술한 책이다. 이 책은 한글의 작용, 조직, 기원 등을 과학적으로 논하여 한글 연구의 기틀이 되게 하였으며 송학(宋學)의 시조라 일컫는 소옹(邵雍)의 『황극경세성음도(皇極經世聲音圖)』를 본보기로 하여 일종의 운도(韻圖)를 만들어 전개한 이론인데, 훈민정음 창제 이후 가장 깊이 있는 문자론을 전개한 학술적 업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산맥의 새로운 이정표 산경표

신경준이 남긴 저서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책이 조선의 산줄기 체계를 정리한 『산경표』라 할 수 있다.

산경표는 우리나라의 산에 관한 구조를 집안의 족보에 비유하여 만든 것인데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줄기의 시조는 백두산이며 종손은 백두대간이라 하며 여기에서 갈라져 나간 산의 계열을 한 개의 정간인 장백정간에서 13개의 정맥으로 나누었다. 마치 족보에서 세손이 뻗어 나가는 혈통처럼 산줄기를 나누는 기준을 수계(산자분수령)으로 삼았다.

신경준의 산경표는 일제강점기 시대 억지로 그어놓은 우리나라 산맥을 제대로 바로 잡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산맥 연구에 대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신경준의 작품 세계

 

그의 많은 시 가운데 대표작은 관수하층(冠峀花層)이라 할 것이다. 이 시는 어느 따뜻한 봄날, 관악산을 바라보니 온 산이 불이 난 듯 철쭉꽃이 붉게 피어 있는데 붉은색 사이사이로 군데군데 파란색으로 보이는 나뭇잎들이 꽃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에 착안하여 지은 시라 한다.

 

冠峀花層(관수하층)

-관악산 꽃 무더기-

 

擲囑花爭發 朝曦又照之(척촉화쟁발 조희우조지)

앞 다퉈 핀 철쭉꽃 위로 아침 햇살 내려 쪼이네

 

滿山紅一色 靑處也還奇(만산홍일색 청처야환기)

온 산 가득 붉은 꽃으로 덮였는데 파란 데가 오히려 멋져 보이네

 

得意山花姸 簇簇繞峨嵯(득의산화연 족족요아차)

제철 맞은 산꽃은 어여쁘게 한 무더기 한 무더기 산꼭대기까지 에둘렀구나

 

莫愁春已暮 霜葉紅更多(막수춘이모 상엽홍갱다)

봄이 저물까 걱정일랑 아예 말게나 단풍 들면 붉은빛이 더 퍼질 터이니

 

신경준의 시의 세계는 다른 문인에 비하여 꽃이나 나무나 풀, 그리고 작은 짐승이나 곤충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졌으며 특히 작은 사물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것의 성정을 시로 노래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또 민은시(民隱詩)도 많이 썼는데 이는 백성들이 살아가는 생활상을 시로 지은 것으로 10편의 민은시를 지어 임금께 보냈더니 영조로부터 잘 지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신경준은 좌승지, 북청 부사, 순천 부사, 제주 목사 등을 역임하고 68세 되던 정조 3년에 고향인 순창으로 돌아와서 여생을 보내다가 1781년 70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지금도 그가 태어나서 활동했던 전북 순창군 적성면에 고이 잠들어 있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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