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총은 총은 총이로되 총이 아니다.
새를 겨냥하여 쏘되 새총에 맞아 죽은 새가 거의 없다. 새총에 맞아 죽은 새는 그야말로 재수 없는 새다. 어쩌다 우연히 맞은 것이기 때문이다. 새총은 아이들이 장난 삼아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다.
새총은 양쪽으로 벋은 작은 나뭇가지를 잘라 갈라진 양쪽 끝에 고무줄을 매달고 줄 끝에 넓적한 가죽을 대어 거기에 돌을 넣고 고무줄이 늘어나게 잡아 다녔다가 놓으면 가죽 안에 들어 있던 돌이 탄력을 받아 총알처럼 세게 튕겨나가는 장난감 총을 말한다.
고무줄이 얼마나 탄력이 좋으냐와 얼마나 길게 늘이는가에 따라 총알이 나가는 세기가 달라진다. 주로 참새를 겨냥하여 쏘는데 참새를 맞히는 것은 새총을 쏘는 사람의 능력으로 기술과 연마의 기능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대부분 새를 맞히지는 못하고 쏘아보는 것으로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새총으로 새를 잡았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친구들을 만나면 이렇게 묻는다.
“자네, 새총으로 새를 잡아보았는가? 나는 잡아보았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새총을 가지고 놀기는 했어도 새를 잡아본 적은 없는 것이다.
“그까짓 것 새총으로 새 한 마리 잡았다고 뭘 그렇게 자랑을 하는가?”
사람들이 놀리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새총을 가지고 놀던 그때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가 없고 지금 새총을 만들어 새를 잡은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때 그 시절에 못했던 일은 세월이 흘러가 버리면 다시는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에 새총으로 새를 잡은 것은 대단한 자랑거리라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그때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때 그 시절에 해야 할 일은 그때 못하면 영영 할 수가 없게 된다. 다 때가 있고 기회가 있는 것이다. 이제 나이 들어서 새총을 만들어 새를 잡아본들 그 시절의 설레임과 재미와 같겠는가.
어떤 학자에 의하면 사람이 자라면서 겪어야 할 일을 겪지 않고 건너뛰면 그곳에 블랙홀처럼 공백이 생겨 후에 그곳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 못해본 일을 해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 공부만 한 사람은 그때에 놀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졸업 후에는 공부를 하지 않고 놀아보려 하고, 학창시절에 놀기만 하고 공부를 않았던 사람은 졸업 후 어른이 되어서 늦공부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중매로 결혼을 했는데 자기는 연애 한번 못해봤다고 아쉬워하더니 결국 바람을 피우더라는 것이다. 오히려 결혼 전에 연애 경험이 많은 사람이 결혼 후에는 마음을 다잡고 배우자에게 잘한다는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자라면서 제 때에 맞는 놀이를 하고 제 때에 맞는 경험을 하면서 자라야 한다. 때가 지나가 버리면 그때의 경험을 할 수가 없고 해 보아도 어색하고 재미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자녀들이 제때에 맞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배려해 주어야 한다. 지금은 공부만 열심히 하고 나중에 지금 못해본 것들을 하면 된다는 발상은 자녀의 발달과정을 모르는 위험한 발상임을 알아야 한다.
산길을 걷다 보면 새총 만들기 좋은 나무가 눈에 띈다. 두 가지가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나무다. 저 나무가 어렸을 때라면 새총 만들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드는 나무 옆을 지날 때는 새총을 가지고 놀던 때가 생각나곤 한다.

요즘에는 새총을 만들 줄도 모르고 새총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도 없다. 그리고 새총으로 겨눠볼 참새도 없다. 놀잇감이 없던 오래 전의 아이들의 구미에 맞는 장난감인 것이다. 그러기에 그때에 새총으로 새를 잡아본 사람의 추억은 귀한 경험이요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새총으로 새를 잡아보지 못한 사람은 헛일만 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새총을 만들기 위하여 얼마나 공을 들였으며 그것으로 새를 맞추기 위하여 얼마나 애를 썼는가. 그리고 얼마나 설레고 즐거운 날들을 보냈는가.
세상에는 새총으로 새를 잡듯이 성과가 별로 없는 일을 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헛일이 아니다.
그때에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다른 일을 잘할 수 있는 경험이 축적된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 시절의 경험은 세상을 살아가다가 힘들고 어려울 때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가.
그때 그 일이 나를 위로해주고 달래주는 정서의 샘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