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병사에 의해 부모를 잃은 어린 소녀가 있었다.
이 소녀가 자라 어른이 되었다.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었다.
어느 날, 교회에 부흥 강사가 와서 ‘화해’에 대한 설교를 했다.
여인은 강사의 얼굴을 본 순간 피가 거꾸로 섰다.
그 사람, 부모를 죽인 나치 병사였던 것이다.
여인은 설교 내내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 사람도 용서를 해야 하나요? 안 돼요. 저 사람만은 용서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럼 우리 부모님들은 어떻게 하라고요.”
어느새 설교가 끝나고 사람들이 교회를 빠져나갈 때에 강사가 입구에 서서 한 사람씩 악수를 하고 있었다.
그가 그곳에 이르자 강사가 손을 내밀었다.
‘하나님,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요? 이 원수의 손까지 잡아야 하나요?’
도저히 손이 나오지 않았다. 강사는 손을 내밀고 서 있었다.
그 때에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손을 내밀어라. 그를 용서하라. 그리고 원수에 대한 원한에서 벗어나거라.”
그는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수십 년 동안 응어리져서 가슴에 박혀 있던 원한의 못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원수에 대한 용서하는 마음이 일자 그의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만고의 계율처럼 널리 퍼져 있다.
나를 괴롭혔던 사람은 나의 아픔과 고통을 모른다. 그리고 희희낙락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아가고 있다. 힘들고 어려운 것은 나다. 원수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 마음 때문에 하루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다. 나날이 힘들고 괴로운 날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그 사람을 용서하면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그 사람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엄청난 큰 뜻을 품고 있다. 그것은 원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서인 것이다.
성경에서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다.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마음의 평화다. 내가 믿는 신에 의지하면서 모든 것을 맡긴다. 근심 걱정까지도 맡긴다. 그럼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이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 있다.
여수의 애양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던 손양원 목사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한센병 환자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며 그들을 돌보았다. 사람들이 한센병이 옮으면 어찌하려 하느냐고 말리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나병에 걸리면 그들과 같이 될 것이고 그러면 그들이 나에게 거부반응 없이 대할 것이니 오히려 잘 된 일이 될 것이다.”
여순반란사건 때 그의 아들 동인과 동신이 좌익 반란군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손양원 목사는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살려내어 양아들로 삼았다. 이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행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기에 손양원 목사를 사람들은 ‘사랑의 원자탄’이라 부른다.
그는 한국전쟁 때 피난 가지 않고 교회를 지키다가 공산군에 의해 총살을 당하여 순교의 길을 밟는다.
지극히 작은 일에도 속이 상하곤 하는 범인들의 삶 속에서 ‘사랑의 원자탄’을 생각하면서 미운 짓 하는 사람 미워하는 마음 지우고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