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

전주 출신 소설가 이정환

작성일 : 2021-08-20 05:25 수정일 : 2021-08-20 08:50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소설가 이정환은 소설보다 더 기구하고 한 많은 삶을 살다 간 사람이다.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처럼 미친 듯이 소설을 쓴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애국심이 높았고 성실했고 부지런했다.

그러나 그에게 붙여진 이름은 ‘사형수 소설가’, ‘한국의 밀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소설가 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조국의 위기를 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고등학생 신분으로 학도병으로 지원하여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전투를 벌이다 적에게 포로로 붙잡히고 만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탈출에 성공한다.

그 후 다시 육군에 입대한다. 군생활을 하던 중 휴가를 오게 되는데 모친의 숙환으로 귀대 날짜를 놓치는 바람에 전시 중 탈영병이 되어 사형을 선고받아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누구보다 애국심이 강했던 그였고 학도병으로 나가 싸우고 다시 군에 입대하기까지 했는데 비애국자로 낙인찍혀 사형수가 되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정환은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으며 살았다. 부친이 전주에서 서점을 경영했기 때문에 책 속에 묻혀 살았다.

부친의 뒤를 이어 그도 전주에서 서점을 내어 책장사를 했다. 그런 연유로 다양한 고서와 신서를 두루 접하게 되었으며 책벌레라는 별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는 1959년 전주의 남부시장에 <덕원 서점>을 열어 운영하였다. 그러다가 전동으로 자리를 옮겨 <르네상스 서점>을 경영하면서 계속 책 속에서 살아갔다.

 

1970년 서울로 거처를 옮겨가게 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에 매달렸다. 늘 책 속에 묻혀 소설을 읽던 그가 마침내 직접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쓴 소설이 신동아 논픽션 공모에 당선 상금을 받게 되었는데 그 상금으로 다시 서점을 냈다.

그 후 종암동에 대영서점을 열면서 사업이 잘 되어 가업을 재건하기도 하였다. 『고서점의 문화사』에는 3대를 이어 온 헌책방 주인 이정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늘 책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가 얼마나 책 읽기를 좋아했는지는 군대에서도 호주머니에 빽빽하게 책을 넣고 다녔는데, 어느 전투에서 총알이 책이 든 호주머니를 맞춰 책 때문에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닦아온 독서 능력을 발판 삼아 한 번 글을 쓰기 시작하면 일사천리로 써나가곤 시작했다.

1969년 『월간문학』에 단편 「영기(令旗)」가 입선되고 이어 1970년 『월간문학』에 단편 「안인진(安仁津) 탈출」이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했다. 이어서 『신동아』에 「자전기(自傳記)」, 「사형수(死刑囚) 풀리다」가 당선되어 소설가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 후 십여 년에 걸쳐 「까치방」, 「샛강」, 「유리별 대합실」, 「뱀 춤」, 「겨울나비」, 「너구리」, 「부부」 등을 계속 발표하며 소설가로서의 자리를 굳혀갔다.

 

1976년 그는 단편집 『까치방』을 내놓는다. 이 책으로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굳히게 된다. 그리고 『창작과 비평』에 장편소설 「샛강」을 연재하면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첫 단편집 까치방을 내면서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첫 단편집을 펴내면서 뭐 따따부따한들 무엇이 얼마나 얻어지겠습니까마는 후기라 초(草)해놓고 좌사우고(左思右考)해보니 문득 내 살아 있는 몸뚱이가 만져지고 그저 즐거워 이렇듯 점잖은 후기 자리에 넣기에는 촌 동네 머슴애 같은 육성만이 절 얼큰하게 들쑤셔옵니다.

아직도 나의 까치방 창가에선 저 검었던 나날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겁니다. 웅얼웅얼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습니까? 거전(去前) 이야기대회를 벌이는 벽 속 화자(話者)들의 끝없는 애타함이 울려오는 중입니다.

혼기에 매달려 제작하려 합네다. 그것은 저 하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거외다. 제가 사는 새벽을 매일처럼 길조가 절 깨워놓고, 수많은 화자들이 밤마다 베갯머리에 앉아 호소해 오는 것을……”

 

『까치방』에는 19편의 소설이 들어있다. 주된 작품인 「까치방」은 「바람개비」 편과 「호각소리」 두 편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까치방」, 바람개비 편에서 소설가로서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주인공은 까치방(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상상력을 발휘하여 바깥세상을 내다보며 탈출도 여러 번한다.

철창 밖으로 부는 바람도 소녀풍과 소남풍으로 만나게 한다. 새들의 유희도 바람개비처럼 자유롭게 놀게 한다.

 

세계적인 불후의 명작들 중에는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쓰인 작품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존 밀턴의 『실낙원』이다.

소설 쓰기에 온 정열을 쏟았던 이정환에게 병마가 찾아온다. 당뇨병의 합병증인 망막증을 일으켜 사람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력이 악화됐으나 형편이 닿지 않아 입원도 못해 마침내 실명하고 말았다. 작가로서 실명을 한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지만 그는 그 후에도 글쓰기를 계속하였다.

 

말년에 당뇨병 망막증으로 눈이 어두워져 원고지 칸이 보이지 않아 자를 대고 어림잡아 글을 써서 작품을 완성하기도 했고 그 글씨를 아내가 해독을 해주었다고 한다. 손가락이 부어 볼펜을 제대로 쥘 수 없어 글씨를 쓸 수 없게 되자 구술로 작품을 완성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당뇨병의 합병증인 고혈압으로 졸도하기까지 하였다. 소설은 곧 그의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이 그의 불후의 명작 『실낙원』을 썼던 것이 망막증으로 실명했던 50세 때였다고 말하면서 자신도 생명이 다할 때까지 소설을 쓰겠다고 했다.

 

이정환의 책 가운데는 본인의 투병기와 아내인 박정숙 여사와 딸인 이 진의 간병기가 실려 있는 『고통의 세월은 어디로 흐르는가』가 있다. 이 책에서 그는 그가 병을 앓으면서 지내온 날들을 자세히 기록했고 가족들은 가장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눈물겨운 이야기를 기록했다. 이러한 정성으로 보면 그는 건강을 되찾아 많은 작품들을 남겼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정환은 작고할 때까지 7편의 장편과 67편의 단편으로 20여 권의 작품집 남겼다. 감옥 생활과 병마 등 굴곡 많은 삶을 살았지만, 이때의 삶이 훗날 소설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고 눈이 보이지 않아도 글을 썼던 강인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의 탄생 90주년과 등단 50주년을 맞이하여 자녀들이 ‘이정환 문학전집’ 헌정하였다. 전 10권으로 된 전집은 그가 쓴 소설과 평론 및 세미나 원고, 기고 자료, 유고 시, 미발표 유작들, 신문 연재소설, 신문기사 모음, 육필원고, 기타 자료 등이 총망라됐다. 전집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표되지 않은 몇 편의 유고 시가 발견돼 수록되기도 하였다.

 

 

그의 딸 시인 이진은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이정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아버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이니까 누구나 끝은 같겠지만, 유독 많은 풍상을 겪어서, 자신이 살아온 삶이 한 편의 대하소설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작품들이 독자와 연구자들에게 널리 익혀서 소설 세계에 제대로 조명되기를 바랍니다.”

 

소설을 쓰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처럼 일찍부터 책방을 운영하며 책 속에 파묻혀 살았고 소설 속의 이야기처럼 극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결코 소설 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정환은 지금도 그가 만든 소설 속에서 이야기를 펼쳐가고 있을 것이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정확하고 빠른 전라북도 소식으로 지역공동체의 건강한 내일을 위한 건강한 정보를 전달드리겠습니다."
저작권ⓒ '건강한 인터넷 신문' 헬스케어뉴스(http://www.hcnews.or.kr)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이정환 #소설 #소설가 #전주 #헬스케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