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두봉 신화를 만든 고창의 진을주 시인

고향의 전설을 시로 승화시킨 『사두봉 신화』

작성일 : 2021-08-22 01:51 수정일 : 2021-08-23 08:54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진을주(陳乙主) 시인의 생애와 문단활동

 

진을주 시인은 1927년 10월 전북 고창군 상하면 송곡리 송림산 아래에 자리 잡은 봉감마을에서 태어났다.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는 훤칠한 신사풍의 용모에 유행에 걸맞은 패션을 선호하는 멋쟁이 시인이었다. 언제나 다정다감해서 후배 문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사람들은 그를 키 큰 시인으로 불렀다.

 

진을주 시인은 근면하고 성실하였으며 매사에 열정적이었다.
대학 졸업 후, 전북도청 공보실에서 근무한 바 있으며, 대한교련의 새한신문사 총무국장과 출판국장을 맡기도 했다.

문학 활동에도 열정적이어서 문단 경력도 다양했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월간 『문예사조』 기획실장, 한국자유시인협회 부회장,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 도서출판 편집 및 제작 담당 상임고문, 21민족문학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감사, 월간 『문학21』 고문 등을 역임하였다.

 

1997년에는 『세기문학』을 창간하였고, 1998년에는 『지구문학』을 재 창간하여 편집 및 상임고문을 맡으면서 많은 문학 지망생들에게 작품 발표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우리나라 문학의 저변확대에 기여하였다.


진을주 시인은 첫 시집 『가로수』를 비롯해서 『슬픈 눈짓』, 『사두봉 신화』, 『그대의 분홍빛 손톱은』, 『부활절도 지나버린 날』, 『그믐달』, 『호수공원』 등 여러 권을 발행하였다.

그중 『사두봉 신화』는 연작시집으로 그의 고향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토대로 신화적 숨결을 그려냈다. 그리고 신작 1인집으로 『M1조준』 등 네 권을 발간하였다.

그는 2011년 세상을 떠났으며, 유고시집으로는 『송림산 휘파람』이 있다.
 

 

진을주 시인의 문학 세계


 

내 눈물로는 채울 수 없는 텅 빈 항아리

놔두소

돌팔매질 보고 빙그레 웃는 속마음

조금만 더 있다가 내가 찾아가 묻힐 항아리

 

「텅 빈 항아리」

 

그가 2007년 『지구문학』 겨울호에 발표한 시 항아리다. 그는 일단 빈 항아리를 설정해 놓고 그것을 채울 수 있는 것을 생각한다. 물 몇 바가지로 채워지는 흔한 항아리가 아니라 물이 아닌 눈물로 채우는 항아리로 구상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큰 항아리다.

눈물로는 채울 수 없는 큰 공간을 결국 자신의 몸을 던져 채우려 한다. 항아리 하나의 세계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 알 수 없는 심연의 세계를 시의 세계로, 또는 인생의 세계로 끌어올리고자 한다.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하여 채워야 할 항아리를 채우기 위해서는 비어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비어있는 것을 억지로 채우려 들지 말고 놔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온 몸을 던져 그것을 채우라 한다. 이 시 한 편을 통하여 시인이 어떻게 시를 쓰고 세상을 살아가는가를 말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시 항아리에서는 ‘여심 같은 깊이’로 표현하고 있다.


 

항아리

갑사댕기 빛

동백기름 지문도 고요로이

치마폭 무늬

꽃그늘 수줍어 흐르고

꼭 여심 같은

깊이여!​

 

 

진을주 시인은 평소 시는 언어가 간결해야 하고 이미지나 상징이 독자들과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낯설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으며 본인도 대체로 간결한 문체로 주제가 명징(明澄)한 작품을 선호하고 있었다.

 

진을주 시인의 친필 노트

 

진을주 시인이 남긴 유품 가운데 두툼한 친필 노트가 있다. 이 노트에는 첫 장에 정성들인 필체로 “진을주 자필 시 모음”이라 쓰여 있고 ‘사두봉 얘기’라는 큰 제목 아래 ‘사두의 아침’이라는 소제목을 비롯한 35편의 시가 적혀있다. 시인이 발간한 시집 『사두봉 신화』의 초고다.

 

이 노트를 보면 그가 시 한 편, 한 편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가를 알 수 있다. 글씨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한결 정성스러운 필체로 쓰여 있다.

그리고 가족들이 기증한 유품 가운데는 그가 평소에 쓰고 다니던 모자와 글을 썼던 만년필도 있다. 가족들이 생각할 때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부모님의 유품들인데 기꺼이 기증을 한 것이다.


 

진을주 시인의 대표시집 『사두봉 신화』

 

『사두봉 신화』는 1987년 10월에 발간한 시집이다. 그는 이 시집에서 고향인 고창군 무장의 영산인 사두봉을 중심으로 예로부터 민간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귀신 이야기를 시로써 형상화하였다. 이 시집에 실린 61편의 시는 모두가 다른 이야기이면서도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인 것 같은 친밀감이 드는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서문에서 『사두봉 신화』는 우리 민족의 신화를 대표할만한 신화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민족 신화가 가지고 있는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들어 있어 내 고장의 생산적인 지혜가 되어 왔으며 『사두봉 신화』의 노래들을 통하여 고향 사람들이 어떤 정서와 가치 의식을 가지고 수천 년 동안 공동생활을 영위해 왔으며 어떻게 문화를 발전해 왔는가 지켜보고 싶다고 하였다.

 

 

진을주 시비 건립

 

진을주 시인이 2011년 세상을 떠나자 시인의 지인들은 그의 문학과 삶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시비건립추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그가 몸담고 있었던 『월간문학』에서도 2011년 4월호에 시비 건립 안내문을 게재하였다. 그리고 시비 건립 성금을 모아 진을주 선생의 생가가 있는 고향 땅 전북 고창군 상하면 송곡리 송림산 자락에 시비를 세웠다. 시비에는 시인의 시 「송림산 휘파람」이 새겨져 있다.

당시에 추진위원장으로는 성춘복 21대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신세훈 22-23대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이유식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이 맡아 전 회원을 대상으로 모금운동을 하였다.

유족대표로는 부인인 수필가 김시원과 조카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을 역임한 진동규 시인이 있다.

 

다음의 시 「송림산 휘파람」은 그의 고향마을 시비에 새겨진 시다.


 

송림산 휘파람

 

휘파람 소리

귀신 같이 알아낸 송림산의 봄

 

능선마다 허리끈이 풀렸네

 

내 동갑 박득배는

휘파람 사이사이

낫자루로 지겟다리 장단 맞추고

나는 지겟가지에 용케도 깨갱발 쳤지

 

하늘은 봄을 낳은 산후의 고통

보릿고개 미역 국물 빛 울음 반 웃음 반이었어

 

휘파람 소리는 황장목 솔바람에

송진을 먹였네.

 

 

진을주 시인!

그는 시가 친구였고 애인이었다. 온몸으로 시를 사랑했던 그는 간직하고 있었던 시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지금도 사두봉 신화가 서려있는 고향 하늘의 송림산 봉우리를 맴돌고 있을 것이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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