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에 아동문학을 태동시킨 사람
그의 생애와 활동
김완동은 전북에서 태어나 전북에서 활동한 아동문학가로서 전북에 아동문학을 태동시킨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는 1903년 11월 9일 전주에서 태어났고, 전주제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전주고등보통학교를 마친 후 대구로 건너가 대구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교사가 되어 다시 전북으로 와 군산공립보통학교, 군산메리뿔딩여학교, 전주신흥보통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후 충남으로 넘어가 서천서림보통학교, 장항성봉심상학교에서 훈도로 있다가 순창교육구청 학무과장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교장이 되어 이서, 금암, 왕궁 옥정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하였다.
그러면서 아동문학에 정성을 쏟았다. 그러나 생전에 책을 내지 않았고 함께 활동한 사람이 없었으며 중앙무대에서의 활동 내력이 없어 그의 작품이나 흔적이 그리 많지 않다.
아동문학가로서의 출발
전북지역에서 초창기의 아동문학을 이야기 하려면 김완동을 빼놓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는 아동문학이 아직은 태동기 때인 1930년대에 중앙도 아닌 전북에서 활발하게 아동문학 활동을 한 사람이다.
그는 1930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부 ‘구원의 나팔 소리’가 당선됨으로써 아동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듬해인 1931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부 ‘약자의 승리’가 당선되었다. 당시에 우리나라 대표적인 신문이라고 볼 수 있는 두 신문사에서 계속하여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었으니 그의 실력은 만만치 않았으며 작가로서의 역량은 충분히 검증 받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의 신춘문예 당선에 대한 평을 보면 이러했다.
“이 작품은 자기 개인적 영락에만 도취되어 일반의 수난을 불원하는 비인간 배를 경계한 것이다. 표현 방식과 사건 전개와 모든 것이 퍽 능란하다. 응모한 여러 작품 중 대표할만하다. 많이 써주기 바란다.”
당시에는 어린이들이 제대로 사람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던 시대였고 아동문학에 대한 관심도 없을 때였다. 그러한 때에 지방에서 아동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동시와 동화를 겸하여 쓰면서 문학 활동을 하였다는 것은 문학적으로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그의 작품이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단순하게 보일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아동문학이 태동할 때이고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보면 그의 문학 활동을 높이 사주지 않을 수 없다.
유일한 유고집 『반딧불』
김완동은 당시에 함께 활동한 아동문학가가 없었고 무엇보다도 살아있을 때에 작품집을 내지 않고 세상을 떠나버렸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록이 드물고 그에 대한 연구나 조사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자료를 찾기가 힘들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전북지역에서 문인들과 제자들이 그의 작품을 모아 『반딧불』이라는 유고집을 발행하였다. 그 유고집을 보면 210mm×148mm의 국판으로 136쪽의 적은 분량의 자그마한 책이다.

그 유고집의 '펴내는 글'을 보면 “여러 선생님, 그리고 학부형들에게 이 자으마한 책자를 권하면서 펴내는 글로 삼는다.”고 하였다
‘엮은 뜻 바침’에서는 “동요 동화가 어린이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다시 말할 나위 없거니와 어린이들의 정서도야에 좋은 거름이 될 만한 것을 여기 내놓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면서 엮은 뜻을 여러분께 바친다.”고 하였다.
둘 다 이 책을 내게 된 배경과 목적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에 그는 아동문학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고 이를 널리 전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발간인으로는 전북도지사 이정우와 전북교육감 김용환의 공동 이름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엮은 뜻 바침’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출판발기인으로 전 문교부장관 고광만, 북중 동창회장 김영배, 동기동창 대표 방기준, 전 전북대 법과대학장 전승범, 국방분과위원장 김동갑, 고려제지 사장 김원전이 발기인으로 나와 있는데 순서는 무순이라고 밝혀놓고 있다.
그리고 뒷부분에 “이 소책자를 삼가 스승님의 영전에 바칩니다.” 라는 글과 함께 5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한 사람의 이름이 한 페이지씩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사람들이 제작비를 부담한 것 같다.
위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고 김종갑, 김원전, 김상진, 김문엽, 김희손의 이름이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기독교인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아들이 회상하는 김완동
그의 둘 때 아들 김일성에 의하면 자기도 아버지에 대한 기록이나 유품이 한두 가지에 불과하여 내놓을 것이 없다고 한다. 다만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사후에 발간한 동시집 『반딧불』이었다.
이로 인하여 김완동에 대한 전시물이 있는 전북문학관은 소중한 자료 하나를 얻게 되었다. 그도 아버지 김완동에 대한 전시물이 전북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가 들려준 아버지 김완동 작가는 평소에 집에서 책을 많이 읽고 늘 글을 쓰는 분이었단다. 그리고 자기를 데리고 자주 산책을 하였다고 하였다. 자기는 작은 아들인데 큰 아들인 김준일이 시인이 되겠다고 시 쓰는 공부를 할 때에 자주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시를 어렵게 쓰지 말고 쓸 데 없는 말을 쓰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아동문학가 김완동은 전북지방에서 널리 알려진 아동문학가였으며 그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과 애석함을 주었다. 그의 유고집을 낼 때에 전북에서는 내로라는 유지들이 참가한 것을 보면 그 유명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