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 김완동의 작품 세계

유고집 『반딧불』에 나타난 작품의 특징

작성일 : 2021-08-28 01:23 수정일 : 2021-08-30 09:06 작성자 : 이용만 기자

 

 

김완동 사후에 뜻있는 이들에 의해 발간된 그의 유고집 『반딧불』에는 동요 23편, 동요곡 7편, 동화 1편, 소년소설 1편, 시조 11편, 논평 1편, 감상문 1편 등 45편의 글이 실려 있다.

책 이름으로 삼은 작품 「반딧불」 동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반딧불

 

반-짝

반-짝

반딧불 아가씨들 어데 가십니까?

밤이면 불 켜들고 어데 가십니까?

 

반-짝

반-짝

반딧불 아가씨들 마중 갑니다.

공부방 도련님을 마중 갑니다.

 

1930년대의 아동문학은 초창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잘 다듬어진 요즘의 동요나 동시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대부분이 노래 가사처럼 리듬이 있는 동요가 많다. 그러나 그때 당시의 세시풍속이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글들이고 초창기를 감안하면 아동문학의 선구자임이 분명하다.

반딧불에서도 아가씨들이 반딧불 켜고 책방 도련님을 마중 간다는 조선말기의 세태나 풍습을 묘사하고 있다. ‘반-짝 반-짝’이라는 의태어의 반복과 ‘어데 가십니까?’와 ‘마중 갑니다.’의 반복을 통하여 리듬감을 살리고 흥을 돋우고 있다.

 

이 작품은 7∙5조의 리듬을 변형시킨 운율이다. ‘반-짝 반-짝’이라는 의태어를 넣어 시선을 끌기도 하고 지루함을 달래기도 하였지만 기본 운율은 7∙5조의 리듬이다.

 

이 반딧불은 김순용이 작곡하여 노래로도 만들어졌다. 이완동이 쓴 동시가 노래로 만들어진 것 이 외에도 “가을이 오네, 눈, 제비, 우리 집, 아침 새, 새벽닭” 등이 있다.

 

 

그가 초창기에 썼던 다른 동요를 보자.

 

 

아침 새

 

아침 새가 짹짹짹

창밖에서 짹짹짹

날이 샜다 짹짹짹

일어나라 짹짹짹

 

 

새벽닭

 

새벽닭이 꼬끼오

이집 저집 꼬끼오

날이 샜다 꼬끼오

잠들 깨라 꼬끼오

 

위의 두 동요를 보면 4∙3 조의 운율에 맞추어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내용이나 운율이 초창기의 작품 냄새가 난다. 초창기의 동요들의 상당수가 작곡이 되어 노래로 많이 불러졌는데 그의 동요도 그런 풍의 글이었다.

 

김완동은 이렇게 짧은 동요만 쓴 게 아니고 ‘칠석의 노래’에서처럼 긴 동요도 만들었다. 이 동요는 무려 행이 88행이나 된다. 칠석날 견우직녀 만나는 이야기를 동요에 담다보니 길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칠석의 노래

 

옛날 옛날 그 옛날

하늘나라에

반짝반짝 아가씨

직녀 아가씨

짤그락 짤그락

베 잘 짜기로

하늘에서 땅 끝까지

이름났었다오.

 

이 칠석의 노래는 1964년 8월 21일 동아일보에 게재되었던 작품이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동아일보는 김완동에게 많은 지면을 할애해 주었다. 김완동의 글 중 칠석의 노래를 비롯하여 “걸음마 공부, 분꽃, 에비, 서울, 걸음마 공부, 이름난 순희, 바둑이, 내 동생” 등이 있다. 이 정도의 지면 할애를 보면 상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밖에도 반딧불에는 “보름달, 아침 새, 새벽닭” 등 29편의 동요가 들어 있다. 그는 동요나 동시만 쓴 게 아니라 동화와 소년소설과 감상문과 논평도 썼다.

그가 동아일보에 신춘문예로 당선된 ‘구원의 나팔소리’를 보면 옛날이야기 같은 냄새가 난다.

 

“옛날, 어느 나라에 왕이 있었는데, 이 왕은 정사에는 조금도 뜻이 없었고 한 몸의 평안한 것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웃 나라 왕들은 자기 나라 백성이 남의 나라 백성보다 잘 살도록 복을 빌어주었는데 이 나라 왕은 그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필경에는 배고파 죽고 병들어 죽는 것보다 싸우다 죽는 것이 낫겠다는 것을 깨닫게 된 백성들은 왕의 불의한 것을 먼저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왕자는 더 갈 줄을 모르고 이 은행나무에 몸을 의지하면서 서천으로 기울어가는 달님을 벗 삼아 옥 퉁수를 불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 밤, 별안간 난데없는 나팔 소리가 들려오더니 말발굽 소리가 땅을 울려왔습니다. 왕은 우렁차게 들려오는 나팔 소리에 고만 정신을 잃고 필경에는 피를 토하고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동화 역시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로써 줄거리도 간단하고 문장의 수사나 표현이 특별한 것은 없다. 그러나 당시에 동화작가로서 등단을 하고 작품 활동을 하였다는 것은 아동문학가로서 동시나 동요뿐만 아니라 동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 하였다는 것으로 그의 문학적 활동이 활발하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김한동은 신동화 운동을 위한 “동화의 교육적 고찰”이라는 평론 썼다. ‘작가(作家)와 평가 제위((評家諸位))에게’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여기에서 작가는 과거 대한 소년 문예운동사에 동화의 공헌을 언급하고 고대 아동이 동경하는 세상과 현대 과학시대의 아동이 추구하고 있는 세상은 판연히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과거의 전설 동화를 문자로 옮겨오는데 그쳤다고 보고 비록 아동문학이라고 해도 대상이 아동인 만큼 건실한 아동관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작가의 자격도 평가의 자격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동화는 과거의 환상적이고 공상적이었던 동화의 틀을 청산하고 교육적이고 건실한 이론 하에 과학적으로 동화의 신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동은 아동으로서 완결 무결하기 때문에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술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하며 상상적 요소가 풍부하고 향상적 요소가 충만하며 외적요소에 정비례하여 발육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다수인의 의사를 존중하며 국부적 개인적 행동은 절대로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완동은 동화나 동시만 쓴 게 아니고 소년소설과 시조와 평론도 썼다. 그가 쓴 소년소설은 동아일보에 소개가 되었다.

 

그가 쓴 시조를 보면 제목이 없이 써져 있다. 그 중에 한 편을 보면 이렇다.

 

훅꾼 고은 향기, 마음 가득 풍기어라

배달의 꽃봉오리, 귀엽게도 맺었구나

이 강산 희망의 꽃이 나니, 아름답게 피어나라

 

당시에 만연했던 충효사상이 그대로 배어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어둡고 힘들었던 시대에 희망을 주기 위한 메시지적인 성격을 띠기도 한 작품들이었다.

그가 쓴 시조가 모두 제목이 없는 것이 아니고 그 가운데는 제목이 있는 것도 있다.

 

수연(壽宴)의 노래

 

만수산(萬壽山) 만수동(萬壽洞)의

만수천(萬壽泉))을 찾아서

만수수(萬壽水) 길어다가

만수주(萬壽酒)를 빚어 올려

고운 님 만수무강(萬壽無疆)을

천만세(千萬歲))토록 비나이다

 

한자어가 많기는 하지만 생활 속에서 상용되는 말들이어서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글이다. 글자 수를 맞추는 데나 짧은 글자로 뜻을 전달하는 데는 한자 관용어가 편리한데 이를 이용하여 글을 쓴 것 같다. 수연의 노래로서 적절한 문장을 구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동시와 동화를 주로 썼지만 논평과 감상문 등의 영역에서도 활동을 했다. 동화를 위한 논평도 했는데 그가 쓴 논평집 ‘신동화 운동을 위한 동화의 교육적 고찰’ 보면 –작가와 평가 제위에게- 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동화를 쓰는 작가들에게 어린이의 심리적 상태와 동화를 씀에 있어서 유의해야 할 일들과 동화쓰기 요건과 동화의 표준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어학회 교육을 마치고’ 라는 감상문 썼다. 그의 감상문은 동아일보에 상 중 하로 나누어 세 번에 걸쳐 실렸는데 1930년 1월 15일, 17일, 18일 자에 게재되었다. 그는 여기에서 아동교육을 맡고 있는 초등교원들에게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중역자임을 자각하고 열성을 다하여 철저한 개혁에 힘을 다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그가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그에게 많은 배려를 하였다. 그는 소년소설 ‘아버지를 따라서’를 동아일보에 게재하였는데 1930년 2월 4일에 쓴 글이라 표시를 하였고 동아일보에서는 편집자 주로 하여 다음과 같은 주서가 달려 있다.

“이 작품은 일제 시 악독한 억압에 학교를 고만 둔 선생님을 아버지로 뫼시고 있는 창룡 군이 당시 할 수 없이 고국을 떠나게 되는 슬픈 광경을 짤막하게 그려낸 소년소설입니다.’

 

그는 작품 활동만 한 것이 아니라 편집 활동도 하였는데 전북어린이신문  주간을 지냈으며 전북일보 편집고문도 지냈다.

 

김완동은 초창기에 전북지역에서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아동문학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였다. 그의 작품은 거의 동요이며 거의 운율을 맞추었다. 그 때 당시에 많이 쓰였던 7∙5조의 운율에 따르기도 하였고 6∙5 조나 8∙5조의 은율을 택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곡을 붙여 노래로 불려진 것들도 있다

 

전북 최초의 아동문학가라고 할 수 있는 김완동에 대한 기록은 극히 미미하다. 그가 남긴 유일한 유고집도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발행을 한 것이고 책도 전라북도문학관에 1권이 비치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지방에서 문학 활동을 하였고 책을 여러 권 내지 못한 이유도 있고 그에 대한 자료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없다 보니 시기를 놓친 것이 아닌가 한다. 그와 함께 활동을 했던 작가들이 김완동에 대한 기록을 하지 않았던 것도 한 원인이 아닌가 한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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