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꼭 의사가 되라는 부모님의 강요로 의사가 된 사람이 있었다.
의사가 되고 나서는 허탈감이 왔다. 매일같이 환자들 속에서 잠시의 여유도 없이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갔다.
이런 일을 하려고 그렇게 고생을 하며 공부를 했나 하는 의구심이 솟구쳤다. 이제 의사가 되었으니 다음에는 무엇을 하지? 이렇게 계속 살아가야 하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무언가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 되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어떤 일로 봉사를 할까 생각하다가 의사가 되어서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돕기로 했다.
의사가 된 그는 자기가 의사로서 사회에 봉사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보람으로 힘든 일도 잘 참아가며 일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휴일에는 별도로 의료봉사까지 하고 있었다. 봉사를 더 잘하기 위하여 공부도 더 하고 일도 더 많이 했다.

같은 의사인데 처음부터 의사가 목표였던 사람과 사회봉사를 하기 위하여 의사를 선택했던 사람의 차이는 이렇게 크다. 문제는 의사가 된 뒤다. 한 사람은 실망과 허탈이 와서 의욕이 상실되었고 한 사람은 보람과 긍지 속에서 더 봉사하기 위하여 계속 노력을 했다.
판사나 검사 같은 법율 종사자들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법관이 되려고 한 사람과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하여 법관이 되려고 한 사람은 일에 대한 의욕이나 성과가 다르다. 목표를 이루고 난 뒤에 오는 마음가짐도 다르다.
처음부터 법관이 되어야겠다고 공부를 하여 법관이 된 사람은 법관이 되고 나서는 허탈감이 온다. 그러나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하여 법관이 된 사람은 법관이 된 뒤에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 하고 더 많은 일을 하면서 보람도 느낀다.
이것은 어느 직종이든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피아니스트가 되라는 것하고 피아노 치는 것이 좋아서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다르다.
슈바이처가 아프리카로 간 이유와 나이팅게일이 전쟁터로 간 이유가 같다. 직업적인 일의 종사가 아니라 봉사를 위한 일의 종사였던 것이다.
자녀들에게 처음부터 무엇이 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이 되라 하지 말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를 말해 주어야 한다.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정해놓고 그 일을 하기 위하여 어떤 직업을 선택할까를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가 정해지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는 본인이 정한다.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려고 한 사람은 어떤 일을 해서 도울 수 있는지 자기의 소질과 기능에 따라 선택을 한다. 의사가 될 것인지, 교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음악가나 화가가 될 것인지는 자기가 정한다. 그러면 후회도 되지 않고 지치지도 않는다.
자녀를 꼭 의사로 만들고 싶은 사람은 처음부터 의사가 되라고 하지 말고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의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며 의사가 되어서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해야 한다. 그러면 의사를 선택할 것이고 의사가 된 후에도 계속하여 보람을 느끼며 지치지 않고 업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