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Ode: Intimations of Immortality, William Wordsworth (1770-1850)
From Ode: Intimations of Immortality
William Wordsworth (1770-1850)
And O ye Fountains, Meadows, Hills, and Groves,
Forebode not any severing of our loves!
Yet in my heart of hearts I feel your might;
I only have relinquished one delight
To live beneath your more habitual sway.
I love the brooks which down their channels fret,
Even more than when I tripped lightly as they;
The innocent brightness of a new-born Day
Is lovely yet;
The clouds that gather round the setting sun
Do take a sober colouring from an eye
That hath kept watch o'er man's mortality;
Another race hath been, and other palms are won.
Thanks to the human heart by which we live,
Thanks to its tenderness, its joys, and fears,
To me the meanest flower that blows can give
Thoughts that do often lie too deep for tears.
- 송시: 영혼의 암시 중에서
윌리엄 워즈워스
그리고 아, 그대 샘들이여, 초원들이여, 언덕들이여, 숲들이여,
우리들의 사랑이 끊어질 거라는 불길한 예언은 하지 마오.
아직도 나는 마음 한가운데서 그대들의 힘을 느끼네.
나는 그저 하나의 기쁨을 포기하고
더 강한 그대들의 일상적인 영향 아래 살고 있을 따름이네.
나는 물길 따라 졸졸대며 흐르는 시냇물을
내가 그들처럼 가볍게 걷던 시절보다 훨씬 더 사랑하네.
새로 태어난 날의 순수한 빛은
여전히 아름답네.
저무는 태양 주위로 모여드는 구름은
인간의 죽음을 지켜본 눈에는
냉정한 색조를 띠고 있네.
또 다른 경주가 있었고, 다른 월계관들이 쟁취되었지.
우리가 의지하며 사는 사람의 마음 덕택에
그리고 그것의 다정함과 즐거움과 두려움 덕택에
나에게는 피어나는 가장 하찮은 꽃도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에는 너무 깊은 생각을 하게 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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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된 구절은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 “Ode : Intimations of Immortality from Recollections of Early Childhood” 중의 제 11연입니다. 이 시의 바로 앞 대목인 10연은 “Splendor in the Grass”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초원의 빛”이라는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시입니다. 이 시의 원제목은 “영생에 대한 깨달음에 부치는 시” 와 같은 식으로 번역이 되는데, 좀 더 정확히 번역하자면, “어린 시절의 회상으로부터의 영생에 대한 암시”로 해야 될 것입니다. 이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문득 영원불멸의 삶이 있지 않을까 하는 암시를 받게 되었다는 뜻일 것입니다.
워즈워드는 젊은 시절 프랑스 혁명에 찬동하는 감성적이고 급진적인 청년이었다가, 프랑스 혁명이 실패하고 나이 들어가면서 철학적이고 보수적인 경향으로 바뀌게 된 시인입니다. 그래서 청년기의 워즈워드와 중장년기의 워즈워드는 다른 시인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위의 시는 감성과 이성의 차이와 보상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의 이미지와 함께 노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시의 처음에서 과거의 샘, 초원, 언덕, 숲을 불러내는 것은 거의 회한에 가까운 어조입니다. 어릴 때는 순수한 마음으로 자연과 하나가 되어 그 아름다움을 즐겼지만, 나이가 들어 여러 가지 사념이 겹쳐져 그 순수한 몰입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 시는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타까움은 나이 들어서 얻게 되는 다른 종류의 보상에 의해 위로를 받습니다. 그는 “하나의 기쁨” 즉 어릴 적의 환희 대신에, “일상적인 영향” 즉 어른의 관조를 얻게 되었다고 말하며, 그로 인해서 새벽의 신선한 빛을 여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죽음을 지켜본, 세상의 슬픔을 이미 알고 있는, 어른의 눈에는 황혼의 석양은 차분한 색조를 띠게 되는 것이 자연스런 이치일 것입니다. 여기에서 냉정한, 차분한 이라고 번역되는 “sober”라는 표현은 “술 취하진 않은”이란 뜻으로 우선 번역되는 말이니까, 술 취한 듯 황홀하게 정열적으로 살던 젊은 날은 이제 다 지나고, 술 깬, 냉정하고 차분한 노년이 온 것에 대한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이츠의 시 중에서 “젊었을 땐 우리 서로 사랑했으나, 우린 무지했었노라.”라는 구절을 떠오르게 하는 부분입니다.
이 시의 마지막은 인생의 모든 슬픔과 험난함과 쓸쓸함은, 비록 정열적인 사랑은 사라졌지만 자연의 모든 현상, 작은 꽃 하나에도 그냥 감상적인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더 많은 관조를 하게 해주는 차분한 지혜를 얻게 하는 힘이 되었노라고 말하며 매듭을 짓습니다. 우리는 맛있는 과자를 가지고 있으면서, 또 동시에 먹기도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가지고 있는 기쁨과 먹는 기쁨, 두 기쁨을 한꺼번에 가질 수는 없습니다. 젊었을 때는 젊음의, 나이 들었을 때는 나이 들었을 때의 즐거움을 찾아 즐기는 게 맞는 일로 보입니다. 한탄은 늙은이를 더 늙게 할 따름이니까요.

그림: 김 분임
가을 서정 53.0 x 40.9 Watercolor on pa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