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端午)는 예로부터 설과 추석 다음가는 우리 민족의 3대 명절이었다.
중종 13년인 1518년 기록을 보면 단오가 설날, 추석과 함께 조선의 3대 명절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거기에 한식과 동지를 넣어 5대 명절 중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단오는 매년 음력 5월 5일이며, 이때가 일 년 중 가장 양기가 센 날이다. 양력으로는 대체로 6월에 해당한다.
올해는 5월 31일이 단옷날이었다. 단오가 5월에 들면 그해는 윤달이 있기 마련이다. 금년에도 6월에 윤달이 들어 있다.
단오의 '단(端)' 자는 처음, 곧 첫 번째를 뜻하고, '오(午)' 자는 '오(五)', 곧 다섯의 뜻으로 통하므로, 단오는 '초닷새[初五日]'이라는 뜻이 된다. 1년 중에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라고 하여 단양(端陽)이라고도 한다.
단오(端午)는 수릿날(戌衣日/水瀨日), 천중절(天中節), 추천절(鞦韆節), 천중가절(天中佳節), 중오절(重午節), 오월절(五月節), 단양(端陽)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단오는 여름의 초입인 음력 5월에 모내기를 끝내고, 재액(災厄)을 예방하고 풍요와 안정을 기원하는 차원에서 제사를 지내는 날로서, 비가 잦은 계절인 5월이 병마(病魔)가 기승하는 시기임을 이용하여 악귀와 병마를 쫓는 풍습을 통해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의 단오는 북부지방에서 중요한 명절로 쇠었다고 한다. 남부지방에 비하여 추운 북부지방에서는 이때가 되면 추위가 완전히 물러가고 따뜻한 날이 오기 때문에 중요한 명절로 삼았다.
단오는 ‘며느리날’이기도 하다.
며느리가 모처럼 친정을 찾아 하루 종일 그네를 뛰며 놀 수 있는 날이라는 뜻에서 며느리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단옷날에는 여자들이 자유롭게 밖에 나가 그네를 탈 수 있는 날이었다
또 ‘씨름의 날’이기도 하다. 씨름진흥법에 의거 매년 단오날을 씨름의 날로 정하고 설날, 추석과 함께 대한씨름협회가 주관하는 전국 장사 씨름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전부터 내려오는 단오 관련 그림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신윤복의 단오풍정(端午風情)으로 '단오도(端午圖)', 또는 '심계유목도(深溪流沐圖)'라고도 한다.
여기에 보면 여자들이 그네를 타고 냇물에 머리를 감는 모습이 보인다. 단오에는 창포에 머리감는 것이 통례였다.

단오를 대표하는 그림, 신윤복의 단오풍정.
최근에는 단오를 기념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만 ‘강릉단오제’와 ‘전주단오제’ 등 단오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그중 강릉단오제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되어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받게 되었다.
단오의 순우리말 명칭인 '수릿날'은 신라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지금 풍속에 단오를 차의(車衣)라고 한다"는 주석이 있는데, 차의는 수레(車)+옷(衣)으로, '수릿날'의 이두 표기이다. 이처럼 단오를 수릿날로 부르게 된 이유에 대하여 여러 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중국 초나라 회왕 때, 굴원이라는 신하가 간신들의 모함으로 조정에서 추방당하자 실망한 나머지, 멱라수(汨羅水)에서 자결하였는데, 그날이 음력 5월 5일이었고, 해마다 음력 5월 5일에 굴원의 제사를 지내던 것이 훗날 한국에 전해져 단오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조선 후기의 학자 김매순이 저술한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따르면, 단옷날 밥을 수뢰(水瀨: 물의 여울)에 던져 굴원을 제사 지내는 풍속이 있으므로 '수뢰날'이라고 부르던 것이 훗날 발음이 변하여 '수릿날'로 부르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해마다 음력 5월 5일이면 산에서 자라는 수리취(狗舌草)라는 나물을 뜯어 떡을 해서 먹는 풍습이 있었으므로 수릿날이라고 불렀다고도 하고, 쑥으로 떡을 지어 먹는데, 떡의 둥그런 모양이 마치 수레바퀴와 같아서 수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도 한다. 단오에 쑥떡을 먹는 것은 발해로부터 전래되었다고 한다.

단옷날에는 갖가지 음식을 만들어 몸을 보양했다.
'수리'란 우리말의 '수레(車)'인데, '높다(高)', '위(上)', 또는 '신(神)'이라는 뜻도 있어서, '높은 날', '신을 모시는 날'이라는 뜻에서 수릿날이라고 명명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단오가 정확히 언제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대략 한반도에 농경사회가 시작되고 나서부터라고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5월에 씨를 뿌리고 나서 풍년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풍습이 있었고, 신라에서는 이를 수릿날이라 하였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의 기록을 보면 '삼한 사람들은 5월이 되면 씨를 다 뿌리고 난 후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이때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와 춤을 즐기며 술을 마시고 노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그들의 춤은 수십 명이 모두 일어나 줄을 지어 뒤를 따르며 땅을 밟고 몸을 구부렸다가 폈다 하면서 손과 발로 서로 장단을 맞춘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외에도 삼국유사에서는 단오에 쑥으로 수릿치 절편을 만들어 먹었으므로 수릿치날이라고 불렀다고 기록하였다. 삼국시대 사람들은 이날 씨름과 택견을 하고 편을 나누어 활쏘기를 하였다. 또한 단오는 보릿고개를 넘기고 살아난 이들의 축제로서 보리이삭을 거두는 시기에 맞추어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단옷날 행하여졌던 남자들의 씨름.
단오는 각 지방마다 부르는 독특한 별칭이 있다.
전남에서는 '단양수리', 경북에서는 '며느리날', 강릉에서는 '과부 시집가는 날', 삼척에서는 '소 군둘레 끼우는 날', 동두천에서는 '미나리 환갑날'이라고 한다. 또한 그네를 뛰며 노는 날이라 하여 추천절(鞦韆節)이라고도 한다.
단오의 풍속 및 행사로는 창포에 머리감기, 쑥과 익모초 뜯기, 대추나무 시집 보내기, 단오장이라 하여 창포 뿌리를 잘라 비녀 삼아 머리에 꽂는 등의 풍속과 함께 그네뛰기, 활쏘기, 씨름 같은 민속놀이 등이 행해졌다.
단오에는 주로 향(香)이 강하고 짙은 창포, 쑥잎, 약초 등을 통해서 악귀와 병마가 오는 것을 방지하는 풍습을 갖게 되며 이 영향으로 쑥으로 만든 쑥떡을 먹거나 창포잎으로 담은 물에 머리를 감는 풍습이 생겼다. 당시에는 문 앞에 쑥잎으로 만든 인형이나 호랑이 등을 문에 걸어놓아 액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궁중에서는 단오에 임금님이 신하들에게 부채를 하사했는데 주로 전주 부채를 하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