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묏자리는 임실군 관촌면 신전리였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학창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은 읊어보았을 신석정 시인의 시다.
신석정 시인은 전주의 여러 학교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많은 문하생이 있었다. 그들이 가장 많이 읊는 시가 ‘이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와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이다.
신석정 시인은 부안 출신이다.
그런데 그가 죽고 나서 처음 묻힌 곳은 부안이 아닌 임실이었다. 그래서 그곳이 어디인지 찾아 나서 보았다.
먼저 그와 친했던 시인 이기반 선생님이 살아생전에 들려준 이야기에 주목했다. 이기반 시인은 신석정 시인과 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전주 주변의 산과 들을 자주 돌아다녔다.
어느 날, 임실군 관촌면 신전리 앞산을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신석정 시인의 둘째 아들인 신광현 씨의 처가 동네였다. 그러한 연고로 이곳을 와보고 눈여겨보아 왔던 곳을 이기반 시인과 동행하여 산을 오르게 된 것이다.
그때에 신석정 시인은 이기반 시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떤가? 이 정도면 죽은 뒤에 누울만하지 않는가?”
신석정 시인이 세상을 떠나고 장지를 결정하는 초상 마당에서 이기반 시인이 그 말을 했고 사위인 최승범 시인이 동의하면서 신석정 시인의 처음 묏자리가 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후에 부안군에서 신석정 시인을 대대적으로 조명하면서 부안으로 이장을 하게 되어 빈자리가 되고 말았다.
한 때는 처음 묏자리에 임실문학 회원들이 참배도 하고 시인의 시를 제자들이 낭송도 했던 자리였다.
20년도 더 지나간 1997년 11월, 한국문인협회 임실지부 회원 20여 명은 신석정 시인과 친했고 손수 장지를 권했던 이기반 시인과 함께 묘소를 찾았다. 그때에 시인의 묘소 치고는 너무 허술했던 것에 가슴 아파했다. 안내판 하나 없고 묘비 하나 없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가지고 간 국화꽃을 봉헌하고 술을 따라 올리기도 하였다. 이기반 시인으로부터 신석정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제자인 문두근 시인이 학창 시절에 외워두었던 고인의 시를 낭송하기도 하였다.

임실문학회원들의 신석정 시인의 처음 묘소가 있을 때의 참배 장면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신석정 시인의 처음 묏자리를 찾아 나서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전주에서 남원으로 향하는 춘향로를 따라가다가 슬치재를 넘으면 임실군이다. 슬치재 아래에 있는 관촌 소재지에서 좌회전하여 들어가면 진안 냉천으로 향하는 길이 있다. 그곳을 향하여 조금 가다가 다시 좌회전하여 농로를 따라가다 보면 전에 상월초등학교가 있던 신전리 마을이 나온다. 그곳에서 앞산을 바라보는 곳에 신석정 시인의 묏자리가 있었다.
그런데 지형이 달라졌다. 산 중턱에 기다란 비닐하우스가 들어선 것이다.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이 길을 지나다녔던 윗동네 상월리에 사는 김여화 소설가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비닐하우스 왼쪽 끝의 조금 위가 신석정 시인의 처음 묏자리라고 알려준다.

비닐하우스 왼쪽 끝의 위가 신석정 시인의 처음 묏자리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
그런데 산천도 의구하지 않고 인걸도 가고 없는 것이다.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시인이 누워 있던 자리에 나무와 풀이 수북하게 자라 무상함이 더했다.
이제는 시신마저 없어져서 쓸쓸함을 더해주고 있다.
그래도 시인이 누웠다 간 자리이기 때문에 돌아오는 발길이 아쉽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