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 의견공원 전신인 원동산 탐방

의견의 이야기로 감추어 놓은 만세운동 유적지

작성일 : 2021-09-29 21:25 수정일 : 2021-09-30 09:03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에는 전국적으로 소문난 의견공원이 있다. 해마다 의견에 대한 대대적인 행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의견공원이 있기 전에 있었던 원동산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곳에 서 있는 의견비와 의견상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수의 의견 이야기는 멀리 고려시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인 1230년대 최자의 『보한집』에 오수 개 이야기가 나와 있다. 당시는 몽고가 고려를 지배하고 있던 시대였다. 최자는 고려 무신정권이 한창이던 때에 활동하던 문인이었다. 당시 무신정권은 몽고에 항거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으며 전란 중 민심을 수습하고 질서를 확보하기 위하여 민간에 흩어져 있는 훈훈한 이야기들을 모아 백성들의 마음을 다독였던 것이다. 『보한집』에 채록된 오수개 설화의 내용은 무신정권의 이러한 의도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오수의 개 이야기는 『보한집』에 수록되기 오래 전의 이야기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오수 주변에서 살고 있던 김개인이라는 사람은 개를 무척 좋아하여 항상 개를 데리고 다녔다.

 

어느 봄날, 김개인은 개를 데리고 나들이에 나섰다. 그리고 술을 많이 마셔서 취한 상태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너무도 술에 취했던 탓에 풀밭에 쓰러져서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마침 들불이 나서 불길이 점차 김개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것을 본 개가 가까운 냇물에 뛰어들어 물을 흠뻑 몸에 적신 후 주인의 주변에 있는 잔디에서 딩굴면서 불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잔디를 적시기를 수없이 반복을 하였다. 불은 주인의 주변까지 타오다 꺼졌고 지친 개는 주인 옆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얼마가 지난 후 술에서 깨어난 주인은 죽어 있는 개와 불탄 자국을 보고 사태를 알 수 있었다.

개를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주고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놓았는데 그 지팡이에서 싹이 나서 커다란 나무로 자라났다. 그래서 큰 개오(獒) 자에 나무 수(樹) 자를 써서 오수(獒樹)라는 지명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오수 의견에 대한 설화의 발상지는 원동산에서 북동쪽으로 800m 거리의 오수천 부근인 상리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1920년대 말에 전라선 철도 공사 중에 천변에 묻혀있던 의견비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왜 그 자리에다 의견비와 의견 동상을 세우지 않고 원동산으로 옮겨와 이곳에 의견비를 세우고 의견상을 세웠을까?

여기에는 우리 민족의 애국심과 민족정신을 약화시키려는 일제의 의도가 숨어 있다.

 

원동산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자 만세운동을 벌였던 장소였다.

1919년 기미 만세운동 당시에 오수 장터의 중심지였던 원동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이기송(李起松, 1888~1939)은 오병용(吳秉鎔, 1881~1967) 선생과 함께 3월 23일과 24일에 오수장터 및 원동산에서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당시 이기송 선생은 원동산에서 오수 장터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우리 조선은 일본의 속국이 아닌 독립국이며 일제를 몰아내고 독립을 찾기 위하여 온 국민이 일제와 싸워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연설을 마친 후 군중들은 원동산을 출발하여 오수 장터거리를 돌면서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일부는 경찰과 주재소, 면사무소 등을 습격하기도 하였다.
그날 남원 헌병대와 임실경찰서의 무장대가 대거 출동하여 발포를 하였고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일로 많은 사람들이 잡혀 갔으며 재판을 받고 적게는 4개월에서 많게는 7년에 이르는 징역형을 받아 옥살이를 했다.

 

이곳 원동산에서 100여m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높이 12m의 오수 망루가 있는데 산불을 감시하고 오포를 부는 일 외에도 오수 시장터에 모인 사람들의 동향을 감시하려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목이 터져라 독립만세를 외쳤던 만세운동 발상지인 원동산 일제는 의견비를 옮겨와 세우고 의견 동상을 세움으로써 원동산을 한낱 개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곳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지금도 원동산에는 1972년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의견비가 서 있어 김개인과 오수의견(獒樹義犬) 설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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