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의 순교자 믿음 위에 세워진 정읍 두암교회를 찾아서

믿음의 결정체인 순교의 산 교과서

작성일 : 2025-06-11 08:04 수정일 : 2025-06-11 08:55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순교자 한 사람의 신앙의 씨앗은 만 명의 살아있는 자의 신앙의 씨앗보다 더 많은 싹을 돋게 한다.

어떻게 죽느냐는 한 사람의 모든 것을 대변한다.

순교자의 죽음은 신앙의 결정체다.

 

우리나라의 초창기 교회사에는 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서려 있다.

그중에서도 정읍의 두암교회는 믿음의 터를 공고히 닦은 한 여인의 순교가 있고 스물두 명의 또다른 순교자들이 있다.

그 여인은 윤임례 집사다.

 

두암교회는 현재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소성면 애당리에 소재해 있다.

두암교회를 찾아간 것은 전주 바울교회 장로 부부 야외 예배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순교의 성지인 두암교회

 

 

두암교회는 1946년 정읍시 소성면 애당리 두암마을 윤임례 집사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윤임례 집사는 큰 아들인 김용은의 전도를 받아 마을에서 20리 떨어진 입암면 천원제일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김용은은 입암면 천원리에 있는 이발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주인인 김금주 씨의 전도를 받아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아들의 전도를 받은 윤임례 집사는 사람들이 교회가 멀어 신앙생활을 하기 어려움을알고 자기 집을 예배당으로 삼아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아들인 김용은은 서울신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자주 내려올 수가 없어서 윤임례 집사가 주관하여 교회를 운영해 나갔다.

윤임례 집사는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면서 끼니때가 되어도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지 않는 집을 찾아가 양식거리와 밥을 가져다주었다.

 

1948년 서울신학교 학생인 아들 김용은이 임동선 전도사를 데리고 와 부흥회를 열었다. 이로 인하여 신앙이 두터워지게 되었고 믿음이 굳건하게 다져지게 되었다.

김용은은 1949년 정식으로 두암교회를 열고 초대 담임 목사가 되었다.

 

  두암교회 마당에 세워진 순교 기념탑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이곳을 점령한 공산군은 주민들에게 공산당에 가담하겠다는 가입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두암교회 교인들은 기독교를 박해하는 공산당에는 가입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1950910일부터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되었다. 공산당은 서명을 거부하는 두암교회 교인들을 끌어다 때리고 고문을 하면서 가입서를 쓰도록 협박했다. 그러나 두암교회 교인들은 끝까지 버티며 서명하지 않았다.

 

공산당은 마침내 이들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첫 번째 순교자는 윤임례 집사의 둘째 아들인 김용채였다. 그는 목에 총을 맞고 순교하였다.

이어서 두암교회로 피난 왔던 큰아들의 친구 정읍제일교회 박호준 집사가 애당마을 앞에서 칼과 죽창과 몽둥이로 가해를 당하고 대창으로 항문에서 목까지 질림을 당해 순교를 하였다.

 

1950916일 새벽 4시에 공산당은 윤임례 집사를 끌고 다니면서 칼과 몽둥이 대창으로 때리고 찌르며 서명하도록 위협을 가했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찬송을 불렀다. 

나는 죽으면 천국에 가니 당신들도 예수 믿고 천국에 가시오.”

그는 죽어가면서도 찬송하며 기도하며 전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마침내 교회로 끌고 들어가 칼로 목을 치고 교회당에 불을 질렀다.

 

후에 윤임례 집사는 강대상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목에 칼을 맞은 흔적으로 발견되었다.

윤임례 집사의 둘째 며느리는 공산 폭도들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자 몽둥이와 죽창과 칼로 무참히 학살을 하였다. 그리고 겨우 한 살짜리와 세 살, 다섯 살짜리 아이들을 우물 속에 던져 수장시키고 말았다.

그리고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였다.

조선환 집사, 김정두 성도, 김환두 성도들도 집에 들이닥쳐 칼과 몽둥이와 죽창으로 죽이고 집에 불까지 질렀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울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무차별 학살하고 말았다.

 

이렇게 두암교회 성도 23명은 공산당 패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인민군이 물러가고 국군이 진주하게 되자 인민군에 가담했던 사람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윤임례 집사를 비롯하여 23명을 살해할 때 가담했던 사람들은 보복을 당하거나 처벌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윤임례 집사의 아들 김용은 목사, 김용칠 목사는 그들을 용서하기로 하고 적극적으로 나서 보호했다.

경찰과 국군에게 그들을 용서해 줄 것을 간청하였고 가지고 있던 땅까지 나누어주었다. 그야말로 예수 사랑의 모범을 보인 것이다. 그들은 용서를 받고 두암교회 교인이 되어 세례를 받고 직분을 받아 봉사하게 되었다.

 

  두암교회 23명의 순교자 합동묘

 

두암교회는 불타고 성도들은 순교하였다. 남은 성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믿음의 씨앗은 그대로 남아 남은 가족들과 후손들이 싹을 키우고 있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19643월에 청년 김태곤은 마당에 멍석을 깔고 14명의 아이들을 모아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그후 청년들이 돌아오고 성인들도 돌아와 불타버린 교회 마당에 교회를 다시 세우게 되었다.

그들이 세운 교회는 초가지붕에 바닥은 멍석을 깐 20평짜리 교회였으나 믿음은 차고 넘쳐 아침저녁으로 모여 예배를 드렸으며 그 후손들이 목사로, 전도사로, 선교사로, 사모로 헌신하는 믿음을 이어가게 되었다.

 

1977년 현재의 교회를 신축하여 이전하게 되었으며 그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전주지방회에서 지원을 하여 순교 70주년 기념 사업을 벌여 순교지로써의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

 

두암교회를 방문한 사람들은 먼저 입구에서 9개 과정의 묵상의 길에 새겨진 글을 읽으며 본당에 오른다. 본당에서 순교 영상을 본 후 밖으로 나가 23인의 합동묘를 돌며 순교자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그들을 추모한다.

 

이어서 기념탑 앞에서 70주년 기념 사업 글과 봉헌문을 읽어보고 돌무지 십자가 앞에서 결단의 기도를 드린다. 십자가를 받치고 있는 돌들은 순교지인 두암교회 터에서 가져온 돌들이다.

 

그리고 순교공원 판판한 돌 위에 차려진 떡과 포도주를 받아마시며 성찬을 받은 후 종각에 가서 종을 3번 울린다. 그리고 70주년 기념관을 둘러보게 된다. 기념관은 성막을 본떠 만든 곳으로 크지 않으며 입구도 좁다. 성막에 들어가는 마음으로 관람을 하라는 뜻이다. 전시관 안에는 제1관에 예수님의 탄생에 관련된 말구유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2관에는 세계 각국에서 가져온 십자가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중앙홀에는 순교한 23인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토우가 전시되어 있다.

 

  순교기념관 안에 있는 순교자 23명의 토우 형상

 

 

목숨을 내놓고 신앙을 지켰고 목숨을 걸고 아들들을 지켰던 윤임례 집사의 아들들은 모두가 교역자가 되어 많은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였다.

 

큰 아들 김용은 목사는 피난처인 군산에 군산중동교회를 개척하여 헌신하였다.

둘째 아들 김용석은 서울 성석교회에서 장로로 충성하였으며

셋째 아들 김용칠은 신학생 시절 몇 안 되는 신자가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렸던 전주태평교회에서 42년을 목사로서 헌신하였으며 퇴직할 때 퇴직금 전액을 교회에 내놓고 나온 사람이다.

 

딸 김용례는 정읍제일교회 청년 집사 서면선과 결혼하여 하나님을 섬겼는데 남편 서면선은 당시에 사형선고나 다름 없었던 폐결핵으로 죽을 날만 기리던 중,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매달려 보기로 하였다.

이 목숨을 살려 주시면 전도자가 되어 복음을 위해 살겠습니다.”

죽기 살기로 기도에 매달렸더니 치료를 받아 신학 수업을 마치고 선유도 교회를 비롯하여 미자립교회를 섬기며 한국의 간디라는 칭호를 받았다.

 

한 사람의 거룩한 선교가 수많은 신앙의 씨를 뿌려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 각국으로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많이 보내는 기독교 국가를 만들게 된 것인데 그중에서도 두암교회의 윤임례 집사의 순교는 더 많은 신앙의 씨를 날리고 있다.

 

행여 세상살이에 쫓겨 믿음 생활이 나태해지거나 믿음이 흔들릴 때는 두암교회를 찾아가 순교자들을 회상하며 믿음을 굳게 다질 일이다.

 

 
이용만 기자 ym60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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