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를 호령하던 그 자리 선화당
전주는 전라도를 대표하는 곳이다.
오래전부터 전라감사가 주둔하는 곳이었다. 전주에 있는 전라감영은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제주도까지 관장하던 곳이었다.
전라감영은 전라도 사람이라면 꼭 한 번 가볼 만한 곳이다.
이곳이 전라도 사람들의 삶을 좌지우지했던 전라감사가 집무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전라감영 복원은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전주 사람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자존감을 키워주는 일이었다.
전라감영은 조선이 건국되던 1392년부터 1896년까지 500여 년을 지방 행정 수장이 주둔하였던 곳이다.
근대화를 빌미로 많은 유물들이 소실되었는데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선화당은 1951년에 폭발 사고로 불타버렸다.
2915년 도청이 신도시로 옮겨가면서 전라감영을 복원하기 시작하여 2020년 10월부터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지금은 이곳을 누구나 들어가 관람할 수 있으며 많은 문화행사가 열리는 문화공간이 되었다.
전라감영에 가면 출입문 옆에 서 있는 큰 비석을 만날 수 있다. 이 비석에는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로 진을 옮긴 후 임금께 올렸던 장계에 썼던 글이 새겨져 있다.
“약무호남시무국가 (若無湖南是無國家)”
- 전라도가 없으면 나라가 없다 -

전라감영 앞에 세워놓은 전라도 관련 비문
출입문은 포정문(布政門)이다. 감영을 들어가는 문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우뚝 서 있는 큰 건물을 볼 수 있다.
전라감사가 집무하던 선화당(宣化堂)이다. 웅장하고 위엄 있다. 여기가 전라도를 관장하던 전라감사의 머물렀던 곳이다.
‘선화당’이란 ‘왕명을 받들어 교화를 펼친다’는 뜻이니 이곳은 전라감영의 심장이자, 조정의 파견 사무소였다. 감사는 이곳에서 행정, 사법, 문화, 군사의 업무를 보았다.

전라감사가 전라도를 호령하던 감영 한가운데 서 있는 선화당
선화당 앞 섬돌 아래 왼쪽(동편)에 가석이 있고 오른쪽(서편)에는 폐석이 세워져 있다. 가석은 죄인들에게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표석이고 폐석은 백성들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신문고 역할을 한 표석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감사가 앉아 있던 의자가 놓여 있다. 장식이 별로 없는 나무로 만든 의자다. 그러나 의자 뒤의 배경 그림은 용과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의자는 작아도 위엄과 권위의 자리라는 것을 상징해 준다.

작아도 위용을 상징하는 전라감사가 앉아 있던 의자
선화당 옆에는 관풍각(觀豐閣)이 있다.
날렵한 정자다. 이곳은 감사가 쉬기도 하고 연회도 베풀던 곳이다. 이곳에서 집무도 보았던 제2의 정청이기도 하다. 관풍(觀豐)이라는 말은 풍속과 민정을 살핀다는 말이다.
전라감영 동쪽 울타리 쪽으로 많은 선정비들이 서 있다.
선정비란 선정을 베푼 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이 선정비는 조선 말기에는 감영 건너편에 세워져 있다가 다가공원으로 옮겨졌다.
2020년 감영을 복원하면서 이곳으로 다시 옮겨온 것이다. 이곳에는 관찰사 18기, 중영장, 별장, 영의정, 암행어사 등 모두 27기의 선정비가 있다. 전라감사를 비롯한 관리들이 많은 선정을 베풀었다는 증거이리라.

감영 동쪽 담을 따라 서 있는 선정비
선화당 뒤에는 연신당((燕申堂)이 있다.
이곳은 전라감사의 처소다. 연신당이라는 말은 논어 술이편에 나오는 말로 ‘공자께서 집에서 쉬고 있을 때는 마음이 온화해지고 평안했으며 즐거워 보였다’는 구절을 본따 만든 것이다. 숙종 14년인 1688년에 전라감사 이유가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내아(內衙)가 있다. 관찰사 가족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관사에 해당된다.
맨 뒤에는 옛 도청 청사에 대한 전시장이 마련되어 있어 근대의 전북 상황을 볼 수 있다.
그리고 200년 된 화훼나무가 서 있다.
선화당 서쪽으로는 상당히 넓은 공터가 있다. 이곳은 감사의 집무를 돕기 위한 부속 건물들이 있던 자리다. 본래는 40여 채의 건물이 있었으나 아직 복원은 못하고 자리를 잡아 둔 곳이다.
선화당 서쪽에 자리 잡아 둔 부속 건물터
1. 보군고와 보선고
관찰사에게 제공하는 음식 재료를 시중에서 구입하여 조달하는 업무를 하는 곳이다. 말하자면 식품 창고다.
2. 영고
감영의 돈과 식량을 모아두는 창고다.
3. 의국
지방 사족을 뽑아 심약을 도와 진상 약재의 관리와 지역민들을 위한 처방이나 약물 제조등을 관장하였다.

서쪽 잔디밭에 있는 전라감영 부속건물 터
4. 영리청
영리들이 근무하는 공간이어서 영리청이라고도 한다, 영리는 관원 내 관원을 보좌하여 실무를 담당하는 하부실무자다.
5. 진상청
각종 진상품을 관리하는 곳이다.
6. 지소와 인방
이곳에서는 감영에서 필요로 하는 한지를 만들었다.
인방은 감영에서 필요로 하는 책을 출판하는 곳이다.
7. 통인청
전라감사의 심부름을 하는 곳이다. 선화당에서 가까운 곳에 두고 있다.
전라감영의 통인청에서는 동짓날에 대사습놀이가 열려 전국에서 소리꾼들이 모여들기도 하였다.

전라감영에서 열린 전라감사를 주제로 한 문화 행사
전라감영은 전라도의 심장부로 지금도 시시때때로 전라도의 위용을 자랑하는 행사가 열린다.
전주 시청에서 캐치프레이스로 '전주를 다시 전라도의 수도로'를 내세웠듯이 언젠가 전라도의 수도 역할을 톡톡히 해내어 찬란하게 꽃 피울 날이 올 것을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