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슴날’을 아시나요

머슴은 상인이 아닌 가난한 양반이었다

작성일 : 2026-03-19 04:07 수정일 : 2026-03-19 09:06 작성자 : 이용만 기자

 

 

 

머슴은 농경사회에서 실제로 농작물을 생산해 내었던 일꾼들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산업역군이다.

 

머슴은 주로 농가(農家)에 고용되어 그 집의 농사일과 잡일을 해 주고 대가를 받는 남자를 말한다.

남성만을 가리키는 말로 여성은 '계집종'이라고 불렀다.

 

머슴은 천민인 노비와는 다르다.

상인이 아닌 양인이 가세가 가난하여 자발적으로 부유한 집에 들어가 급여와 숙식을 제공받고 일하는 사람이았다. 수고료는 동짓날에 일 년 치를 한꺼번에 받는데 이를 새경이라 한다.

행랑아범, 행랑어멈은 행랑채에 얹혀사는 더부살이들을 일컫는 말이라 머슴과는 다르다.

그래서 드물게는 주인집 딸과 머슴의 혼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머슴은 노비와는 다른 가난한 양반이었다. 

 

그러나 머슴은 머슴이었다.

일만 죽어라 했지 대접은 받지 못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은 대접을 받는 날이 있었다.

그날이 바로 머슴날이다.

 

머슴날은 음력 이월 초하루.

양력으로 319, 오늘이다.

 

농경 세시풍속인 '머슴날'은 한 해 농사를 짊어질 일꾼들의 사기를 충전시키기 위해 주인이 머슴들을 위해 하루 일을 하지 않도록 놀려주고 먹을 것을 장만하여 맛있게 먹여 주었다.

머슴들은 동네에서 한데 어울려 주인이 마련해준 술과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놀았다.

 

  우리 조상들은 머슴날을 두어 하루 먹고 마시며 놀게 했디/

 

땅을 갈아엎고 씨를 뿌리는 농사철 직전에 머슴날 행사를 함으로써 겨울 휴식이 끝나고 농사 준비가 임박해졌음을 알리는 날이었다.

 

이날을 노비일(奴婢日), 선머슴날, 여종날, 농군의 날이라고도 불렀다.

머슴들만 위하는 날이 아니라 여종들도 함께 노고를 치하하고 놀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머슴을 위하는 풍습은 정월대보름에도 있었다.

경도잡지(京都雜誌)에 따르면 정월 보름날 마당에 세워두었던 볏가릿대에서 벼 이삭을 내려 떡을 한다고 하였다.

크기는 대개 손바닥만 하게 만들며 작게는 달걀만 하게 만드는데 모두 반쪽의 둥근 옥 모양으로 만들었다. 콩을 불려서 소를 만들어 넣고 시루 안에 솔잎을 겹겹이 깔고 넣어서 찐다. 푹 익힌 다음 꺼내서 물로 닦고 참기름을 바르는데, 이를 송편이라고 했다.

송편은 추석에만 먹는 음식이 아니라 정월대보름에도 먹었다.

 

   머슴들은 주인을 대신하여 농삿일을 도맡아 했다. 

 

송편을 머슴들에게 나이대로 먹이고 위로했다. 주인은 술과 음식을 베풀고 머슴들은 농악을 울리며 노래와 춤으로 하루를 즐겼다.

그해에 성년이 된 젊은이는 이날 머슴들에게 술을 한턱냈다. 이 과정을 거쳐야만 어른 취급을 받아 동등한 노동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에는 떡을 종들에게 나이 수대로 나누어 먹이며 속칭 노비일이라 했다.

농사일이 이때부터 시작되므로 일꾼에게 잘 먹이는 것이다. 떡을 만들 때는 팥, 검정콩, 푸른 콩 등으로 소를 마련하는데 혹은 벌꿀을 섞어 넣고 찐 대추나 삶은 미나리를 넣어 떡을 만들기도 했다. 이날부터 이것을 시절 음식으로 삼는다고 했다.

 

머슴날은 오늘날의 근로자의 날모태가 되는 날이다.

근로자의 날은 정부에서 법률로 정한 기념일로써 여기저기에서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는데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근로의 신성함을 알고 머슴날을 만들어 기념하였던 것이다.

 

 

 
이용만 기자 ym60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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