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디세이〉가 내게 건넨 질문

나만의 이타카를 찾아서

작성일 : 2026-08-12 08:20 수정일 : 2026-08-12 08:54 작성자 : 이정호 기자

 

 

1. 10년의 귀향 항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영화는 그리스 신화 속 최고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뒤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려 한다. 그런데 그 길이 자그마치 10년이나 걸린다. 바다 위에서 괴물을 만나고, 마법에 걸리고, 유혹에 흔들리면서 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생각했다.

 

'이 이야기는 그냥 옛날 모험담이 아니구나. 우리가 사는 인생이랑 똑같잖아.'

 

영화를 보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놀란 감독은 이 영화에서 신이 오디세우스를 직접 도와주는 장면을 별로 넣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오디세우스가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은 적을 무찌르는 통쾌한 액션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실수와 잃어버린 것들을 하나하나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2. 승리 뒤에 찾아온 방심이라는 함정

 

이야기는 통쾌한 승리로 시작한다. 오디세우스는 커다란 목마 안에 병사들을 숨기는 꾀를 내서 10년 동안 끝나지 않던 전쟁을 마침내 끝낸다. 그런데 딱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은 "우리가 다 해냈다!"는 자신감에 취해서 겸손함을 잃어버린다. 근처 마을을 함부로 약탈하고, 신을 우습게 보는 오만한 행동까지 저지른다.

 

이 장면을 보면서 이런 상상을 해봤다.

오디세우스: "우리가 이겼어! 이 정도면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현명한 부하: "잠깐만요, 왕이시여. 이길 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그 말을 흘려듣는다. 그리고 얼마 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를 속이고 탈출하는 데 성공하고도 마지막에 괜한 허세를 부리다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고 만다. 큰 성공을 거둔 바로 다음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것, 이 영화가 가장 먼저 알려준 교훈이었다.

 

 

3. 괴물보다 무서운 건 나를 잃어버리는 것

 

여행이 계속되면서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은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시련과도 마주한다. 라이스트리고네스라는 식인 거인족의 공격은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불운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더 충격적이었던 건 마녀 키르케의 섬 이야기였다. 키르케는 마법으로 부하들을 짐승으로 바꿔버린다. 원래 사람이었던 그들이 순식간에 돼지로 변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몸만 짐승으로 변한 게 아니라, 순간의 욕심에 눈이 멀어서 이성을 잃어버린 사람도 결국 짐승과 다를 게 없구나.'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세이렌의 섬이었다. 세이렌은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들을 홀려서 죽음으로 이끄는 존재다. 오디세우스는 이 유혹을 이기기 위해 놀라운 방법을 쓴다. 자기 몸을 배의 돛대에 스스로 쇠사슬로 묶어버리는 것이다.

 

오디세우스: "내 귀에 저 노래가 들리기 시작하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나를 풀어주지 마라."

부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오디세우스: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참는 게 아니야. 애초에 흔들릴 자리에 서지 않는 거지."

 

이 대목에서 나는 크게 깨달았다. 우리는 흔히 '유혹은 의지로 참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달랐다. 유혹이 닿을 수조차 없는 곳에 스스로를 미리 묶어두었다. 진짜 강한 사람은 참는 사람이 아니라, 애초에 흔들리지 않을 준비를 해두는 사람이라는 걸 배웠다.

 

 

4. 영원한 삶 대신 오디세우스가 선택한 것

 

영화에서 내 눈물샘을 가장 세게 건드린 장면은 요정 칼립소의 섬이었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엄청난 제안을 한다. 늙지도, 아프지도, 죽지도 않는 신 같은 삶을 살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상상해보라. 고통도 없고 걱정도 없는 완벽한 삶을 말이다.

 

칼립소: "나와 함께 있으면 당신은 영원히 늙지 않아요. 고통도, 죽음도 없어요."

오디세우스: "하지만 그건 내 삶이 아니야. 나는 늙고, 아프고, 언젠가 죽더라도 나 자신으로 살고 싶어."

 

오디세우스는 그 완벽한 안락함을 거절하고 다시 거친 바다로 나선다. 이 장면에서 오디세우스는 이런 의미의 말을 남긴다.

“사람이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은 사실 이미 한 번 가졌다가 잃어버린 것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늘 저 멀리 있는 대단한 무언가를 갈망하지만, 정말 소중한 것은 이미 예전에 내 곁에 있었던 평범한 하루하루가 아닐까.

 

마침내 이타카에 도착한 오디세우스를 기다린 건 화려한 보상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남편을 기다리며 지혜롭게 버텨온 아내 페넬로페, 아버지 없이도 훌륭하게 자란 아들 텔레마코스였다. 그리고 거지로 변장해 몰래 궁전에 들어간 오디세우스가 아무도 당기지 못한 활시위를 단 한 번에 당기며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다.

 

5. 나의 이타카는 어디에 있을까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나에게는 두 가지 질문이 남았다.

"내가 진짜로 돌아가야 할 곳, 나의 이타카는 어디일까?"

"지금 나는 어떤 달콤한 유혹의 바다를 지나가고 있을까?"

 

 

내가 힘들어도 계속 코칭 교재를 만들고, 영상을 찍고, 다음 세대를 위한 메타코칭이라는 일을 놓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향하는 이타카는 아이들이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며 자기 삶의 주인이 되도록 돕는 자리다. 나의 비전은 “한 사람의 가능성을 찾아주고, 역량을 극대화하여, 꿈과 목표를 이루게 한다.”이다. 비전을 향해 길을 걸으며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으로 완성되는 자리, 그곳이 바로 나의 고향이다.

 

가끔은 편하고 쉬운 길로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지쳐서 그냥 주저앉고 싶은 순간, 세이렌의 노래처럼 달콤한 유혹이 귓가를 맴돌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나는 오디세우스처럼, 나 자신을 ‘비전’이라는 돛대에 단단히 묶어두기로 다짐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그려낸 오디세우스는 신의 도움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선택으로 완성된 영웅이었다. 나의 이타카로 가는 길도 결국 내가 매 순간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에 나를 붙들어 매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웅장한 시선으로 이 위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 참 감사한 하루였다. 영웅의 상처와 그것을 이겨낸 지혜를 마음에 새기며, 흔들림 없이 나의 이타카를 향해 나아갈 힘을 얻는다.

 

 

이정호 기자 dsjh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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